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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랬구나 Jul 10. 2023

쑛다리를 배려하는 방법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오래전 이 노래 속 주인공처럼 우리 집도 유난히 막내가 별명 부자이다.


그 많은 별명 중 하나가 쑛다리다.


절대 놀리는 건 아니다. 유아기의 몸은 머리는 크고, 머리와 몸통에 비해 팔다리가 짧은데 그 모습이 귀여웠다. 만세를 해도 손끝이 머리끝까지 밖에 안 오던 세 살 시절부터 쑛다리라고 불렀던 거 같다.


우리 막내의 키도 이제 130cm가 넘지만 그래도 아직 어른들에 맞춰진 집에서 불편한 것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 막내를 위한 배려를 하고 있다.


욕실 수건걸이

집집마다 수건걸이의 위치는 많이 다르겠지만 우리 집 수건걸이는 유난히 높다. 보통처럼 수건을 수건걸이에 걸쳐 놓으면 우리 쑛다리는 손은 닦을 수는 있지만 수건을 꺼낸 경우 다시 걸 수 없다. 그리고 수건을 넣어둔 욕실 장에서 새 수건을 꺼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머지 가족 구성원인 엄마 아빠 형아가 약속을 했다.


항상 수건을 집게에 걸어 놓을 것. 그리고 수건을 쓰고 가지고 나간 사람은 새 수건을 걸어 놓고 나올 것.

집게로 한쪽 끝을 집어 놓으면 수건이 길게 펼쳐져서 우리 쑛다리가 손 닦기에 훨씬 수월하다.


 

내용 이해를 위해 사진이 꼭 필요한데, 지저분하여 공개하기 참으로 부끄럽습니다만(필터적용)


주방 발판

싱크대에 올려진 정수기는 우리 쑛다리가 1회 출수 버튼은 누를 수 있으나 다른 버튼을 누를 때, 또는 정수기 옆 물컵을 다 써서 찬장에서 추가로 꺼내야 할 때 발판이 유용하게 쓰인다. (물론 싱크대 가장 상단에 그릇을 넣고 뺄 때 엄마도 쓴다)


발판이 한 덩치하고 주방 동선 상 걸리적거리기도 하지만 우리 쑛다리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목마를 때 벌컥벌컥 물을 마시기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발판이 항상 제자리에 있도록 나머지 세 사람이 신경 써 준다.


한 번은 반찬통이 발판 위에 산더미처럼 놓인 적이 있었다. 발판을 써야 하는 우리 쑛다리는 짧은 한숨을 휴 하고 내쉬고는 반찬통을 주방 바닥에 하나하나 내려놓고 정수기 앞으로 발판을 가져갔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엄마 아빠는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미안해, 발판에 물건 올려놓지 않을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쑛다리를 위한 배려를 엄마 아빠보다 큰 아이가 가장 잘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가장 최근까지 쑛다리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동생의 불편함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게 아닐까 싶다. 쑛다리가 아기말을 할 때 엄마아빠는 못 알아 들어도 형아는 용케 알아듣고 해석해주곤 했다. 엄마 아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쑛다리로 사는 것의 불편함을 큰아이가 늘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쑛다리의 불편함을 자주 깜빡하는 사람은 아빠다.(남편 미안)

아빠는 우리 집 최장신이기도 하고, 본인이 쑛다리의 삶을 벗어난 지도 가장 오래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 집 쑛다리가 수건이 없을 때 부르는 1순위가 "엄마!!! " 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축축하게 젖은 수건을 들고나가면서도 쑛다리가 호출하는 "엄마!! 수건이 없어!!"가 화장실에서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듯하여 나가다가도 돌아와서 수건을 걸어놓는다.


나에겐 당연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우 어렵고 몹시 곤란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큰아이와 작은 아이를 통해 배웠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하나 배운다.

늘 아이들에게 배운다.

누가 누구를 키우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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