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공포증이 있다.
사실 조류라는 단어를 쓰는 지금도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단어로도 끔찍한 그 조류를 오늘의 글 소재로 삼다니, 1일 1 브런치가 만만치 않은 작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언제부터 새를 무서워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께 여쭤봐도 어렸을 때 새를 무서워할만한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고 하시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새를 무서워했다.
출근길 시간이 촉박해도 좁은 길에서 비둘기를 만나면 지나가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그 뒤를 따라가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멀리 돌아서 갔다.
20대 때 친구와 한강 공원에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나의 조류공포증을 익히 알고 있는 친구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조약돌을 몇 개 나에게 쥐어주고 갔다. 혹시 본인이 없을 때 비둘기가 다가오면 비둘기 쫒는 용으로 쓰라고 속삭였다. 친구도 나도 깔깔 웃었지만 조약돌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이렇게 내 주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정도로 나의 조류공포증은 중증이었다.
불편하지만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진짜 문제는 아이를 낳고 시작되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새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기 때부터 엄마가 새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아이도 새를 무서워할까 봐 아이 앞에선 의연한 척했다.
유모차를 태워 아파트 산책을 하면 아이는 비둘기 떼를 좋아했다. 말을 못 하던 아가 시절에도 조금 더 가까이 데려다 달라며 손짓을 했다. 그러면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 두 걸음 어렵게 비둘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동물원에 가서 화려한 공작과 앵무새들을 보면 나는 소름부터 돋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이쪽은 아빠랑 보고와 엄마는 여기 있을게 하고 남편에게 눈짓을 하며 아이들을 아빠에게 보냈다.
그럭저럭 티 안내며 살다가 어느 날 자연관찰책을 읽어주다가 악 소리와 함께 책을 덮고 말았다.
아직도 이름이 생생한 '넓적부리황새'였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어리둥절한 아이들에게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노라며 엄마는 사실 새를 무서워한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마다 특별히 무서워하는 게 있을 수 있는데 엄마에게는 새가 그렇다고. 그리고 너희가 새를 무서워할까 봐 그동안 이야기를 안 했지만 너희는 새를 안 무서워하니 엄마가 이제는 이야기하는 거라고. 아이들은 그런 나를 이해해 주었고, 그다음부터는 길을 걸을 때 비둘기 떼로부터 엄마를 보호해 주는 보디가드 역할을 해 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러다가 얼마 전 둘째 아이의 방과 후 수업 참관수업에 갔다가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었다. 장래희망이 생물학자인 아이가 매우 좋아하는 생명과학 수업이었는데 하필 그날 주제가 오리였다. 그나마 조류 중에 덜 무서워하는 종류라서 교실에 오리와 함께 있는 것은 참을만하겠다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 부모님들이 장갑을 끼시고 오리를 잡아서 아이들이 잘 관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셨다.
오 마이 갓!
다른 엄마들은 어찌나 적극적으로 그리고 편안하게 오리를 잡으시는지. 아이에게 미안해는 순간이었다. 굳어있는 나의 얼굴을 본 아이는 짧은 한숨과 함께 '엄마 그냥 사진이나 찍어줘'라고 했다. 다행히 아이는 장갑을 끼고 씩씩하게 오리를 관찰했다.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적극적으로 참여 못해 죄송하다고, 사실은 제가 조류공포증이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선생님께선 감사하게도 이해하신다며 오히려 조류를 불편해하는 부모님이 계실 수 있는걸 미리 생각지 못했다고 죄송하다고 하셨다. 아닙니다 제가 더 죄송합니다로 훈훈한 마무리를 했다.
며칠 전 초복이기도 했는데, 난 통으로 된 생닭을 안 산다. 통으로 된 그 녀석은 손질을 못한다. 가격이 더 비싸도 볶음탕용으로 토막 난 닭을 사서 백숙을 끓인다. (닭이든 오리든 먹는 건 잘 먹는다)
보통 조류공포증 있는 사람들이 새를 무서워하는 포인트는 부리, 깃털, 발이다. 그래서 조금 덜 무서운 새가 있다. 부리가 뾰족하지 않고, 깃털이 화려하지 않고, 발이 뾰족하지 않은 오리와 갈매기 되시겠다.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며 의연한 척을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조금 덜 무서워졌다.
이제는 비둘기가 있어도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 덕분이다.
(이미지 출처_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