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등교 준비로 바쁜 시각.
아이들은 일기예보를 찾아본다. 오늘 옷을 어느 정도 두껍게 입어야 하는지 정하기 위해서다.
분주한 아이들을 뒤로한 채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하고 있는데 흥분한 형제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오늘 눈 온대!! 손톱에 봉숭아물 남아있어?"
"근데 형아 엄마는 괜찮아. 이미 첫사랑을 이뤘으니까."
양치하다 풉! 하고 뿜었다.
요 2학년 꼬맹이가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 다는 건 또 어디서 들어가지고.
그런데 사실 더 뿜은 포인트는 아빠가 엄마의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아이들의 순수함이었다.
차마 말로는 못하고 속으로만 말했다.
'후후 아가들아 아빠가 첫사랑인줄 알아?'
입으로 뱉어본지도 오래된 단어. 첫사랑.
단어마저 생소하게 느껴진다.
첫사랑? 하고 되뇌다 문득 고등학교 철학 수업시간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사랑은 변하는 것인가 아닌가를 물으셨다.
수학시간엔 침묵해도, 철학시간만큼은 다들 손을 번쩍번쩍 들고 열띤 토론을 했었다.
더구나 열일곱 소녀들에게 사랑이라는 주제가 던져지니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것이라는 아이들과,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아이들의 고만고만한 의견으로 핑퐁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우리 반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던 친구가 손을 들고 말했다.
"사랑이란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그 대상이 변할 뿐."
친구의 한 마디에 50분의 토론은 정리되었다.
그 친구의 이름도, 철학선생님의 대답도 기억나진 않았지만 선생님께서 그 친구의 대답에 환하게 웃으셨던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난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친구의 말이 강렬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사랑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늘 그 이야기가 먼저 생각난다.
사랑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대상이 변할 뿐.
마흔이 넘은 지금 생각해도 곱씹을수록 멋진 말이다.
늘 벽돌 같은 책을 읽던 친구였다. 말도 논리적으로 잘하고 글도 잘 쓰던 친구로 기억한다.
지금 그 친구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