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복약 중입니다. 3

지옥의 시작

by 능선오름

아직, 복약 중입니다. 3

불면증, 우울증 ing


돌이켜 다시 꼽아보면, 사회에서 일하기 전 군 생활에서 야간훈련 같은 것은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고, 또 젊은 시기이니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었다. 다만 그 시절의 가장 크게 잠을 못 잤었던 기억은 당시 ‘독수리 훈련’ 인지 뭔지 때문에 작전 벙커에서 꼬박 6일간 군화 한 번 벗지 못하고 잠시 책상에 엎드려 존 것 말고는 정말로 꼬박 6일 밤을 새운 기억이 있다.

7일째가 되니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현상이 나타나, 작전 과장께 보고 드리곤 BOQ로 가서 하루 오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기절한 듯 잠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사회생활에서의 야근은 일 때문에 일 년 내내 지속하는 것이니, 야간에 야식을 먹고 아침에 쓰러지듯 잠든 나날이 어언 십여 년이라 나도 모르게 신체 리듬에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재작년 코로나의 광풍 한복판에서 참 많은 것을 잃었다.

당시 전 국민 중에 안심할 수 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 나는 당시에 사람도 관계도 대부분을 잃고 나 자신도 생전 처음으로 깊디깊은 우물 속에 침잠하였었다.

불안, 공황, 공포, 체념, 포기, 우울, 무기력, 무반응.

힘겹던 시절에도 늘 군에서의 강력하던 고비들을 떠올리며 지나온 시간이 그야말로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런 현실에서도 도리없이 돈은 벌어야 하고,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헛헛함 속에서도 무관히 돌아가는 세상에 끼어야 했었다.

그렇게 정말 아무 일 없는 듯 밖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그러다 집에 와 지쳐 누우면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지옥의 시작이었다.

어릴 적의 소심함 혹은 순진함, 혹은 상상 속을 거닐던 버릇이, 거친 군 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며 ‘바뀌었다’라고 생각해 오던 본래 내 의식 저 아래 깊숙이 잠겨있던 퇴적물들이 스멀스멀 수면으로 떠 올랐다.

책도 읽어보고, 유튜브에서 온갖 수면을 부른다는 영상 혹은 음악도 들어보고, 그렇게 잠들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창문이 희부옇게 밝아왔다.

그리 밤을 새웠으니 출근해도 정신은 늘 몽롱하고, 늘 산 건지 죽은 건지를 구별 못 하는 좀비 같은 상태가 되었다.

온갖 망설임 끝에 정신과 의원을 찾았고, 약 처방을 받았다.

그래도 잠이 안 와서 이틀 치를 한 번에 털어 넣은 적도 있었다.

첫 의원에서 주는 약으로 잠깐 잠이 들고는 두어 시간 후에 벌떡 일어나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을 배회하다 보면, 나 자신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창밖 아파트들의 창문은 모두 어두컴컴한데, 이따금 이 빠진 곳처럼 조명이 들어온 드문드문 한 세대를 보며 작은 위안 혹은 스스로 상태에 대한 변명이 문득문득 들곤 하였다.

고심 끝에 다른 의원을 찾았다.

그 의원의 원장은 비교적 젊었고, 나의 신세타령 같은 증례에 귀 기울여 주고, 약 처방을 주었다.

이전과는 색상과 형태가 다른 알약들이 연노랑, 파스텔 핑크, 이런 식으로 버무려져 있었다.

알약을 입에 털어놓고 물을 마시고 잠을 청하던 나는 어느 순간 정말로 미칠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잠이 오는 건 아니고 그저 어지럽기만 한데, 가슴은 쿵쾅거리고 금방이라도 발코니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것은 잠 못 드는 밤의 웅성거림과는 완전히 달랐다.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고, 금방이라도 세상이 끝장날 것 같은.

비교적 타인들에게 F 중에서도 제일 큰 F라고 평가를 받던 내가,

당장 한순간을 주체 못 하는 불안쟁이가 된 것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논리적으로 ‘ 어차피 너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잖아? 설사 이러다 죽는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야? ’라고 이성이 질책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 이성의 질책조차도 버거워하는 내가 있었다.

밤은 길었고, 보통 불면의 밤과 완전히 다른 지옥 같은 밤이었다,

연거푸 물을 마시고 약 10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그나마 그런 불안감이 사그라들었다.

만약, 이런 것이 약의 효과라면 아마도 이런 약을 먹여 스파이를 고문하고 실토를 받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국, 다음 날 또 다른 의원을 찾아 옮기는 나 자신에게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쓴 물처럼 자괴감이 밀려 올라왔다.

이 화창한 봄날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모두 신이 나 보이지는 않지만, 나처럼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은데.

심지어 저 길거리 모퉁이에서 꽁초를 줍고 있는 노숙인보다 더 일그러진 얼굴을 하는 나는 대체 뭔가 싶었다.

내가 나를 지겨워하고, 내가 나를 향하여 손가락질하는 나날이라니.

인간뿐인 아닌 모든 동물의 본능은 자신을 방어하고 자신에게 정당한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자기혐오와 무력감, 그리고 늘 부족한 잠으로 인한 충혈.

예전에는 자고 싶어도 임무 때문에, 일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는데.

이제는 온종일 자고 싶으면 자도 될 만큼의 시간을 쓸 수 있는데.

밤마다 생지옥을 겪는 내 아이러니는 돌아보아도 아이러니였다.

새로운, 그러나 새롭지 않은 의원의 입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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