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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12. 2024

아직, 복약 중입니다 7

속았네

아직, 복약 중입니다 6     

속았네     


5월. 6월.

담당의가 약을 바꾸자고 했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같은 종류의 약을 먹으면 내성도 생기고, 이전보다는 컨디션도 좀 회복된 것 같으니 약성을 좀 내려보고 약 종류도 바꿔보자고 했었다.

그렇게 며칠을 별생각 없이 약 복용을 했다.


그리곤 어라?

뭔가 이 꿀꿀한 느낌들이 다 날아가버린 것이다!

온몸에 활력과 힘이 넘치고 세상에 고민이 별로 고민스럽지도 않아 졌다.

나는 이제 약도 낮춰 복용하는데 몸이 이전에 가깝게 – 2년 전 상태로 – 돌아온 기분에 한참 들떴다.

두어 달 전과는 다르게 사람을 만나도 에너지가 넘치고, 상대방들도 내가 뭔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 드디어 터널의 끝이 보이는구나.

이제 다시 운동도 하고, 미뤄둔 논문도 – 무려 4년  - 다시 쓸 엄두가 나고, 다른 야간 강의들도 좀 들으러 다니려 신청도 하고.

주변인들은 내가 너무 좋아 보여서 좋다고도 하고,     

나 스스로도 새로이 태어난 것 같은 기분에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전투적이 되었다.

무엇이든 다 이겨내야지!

정신 차리고 그간 미뤄둔 일도 다 하자!

주말에도 단 삼십 분을 앉아있지 않고 미루었던 창고 정리와 청소, 이불빨래, 김치 담그기, 반찬 만들기..... 그림도 다시 그리고.

이제 나는 2년이 넘는 기나긴 터널을 가까스로 지나 거의 터널의 출구가 보인다는 희망에 벅차 매일 스스로 너무 업 되진 말자 다짐했는데.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6월 들어서 약을 한 단계 더 낮춰서 바꾼다고 했는데.

그 이후 나는 다시 터널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 기분은 마치, 환히 보이던 앞의 터널 끝이 사실 알고 보니 잠시 터널 중간에 있는 비상차량 정차장을 밝히는 조명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4월 이전보다도 더 심한 후폭풍이 몰려들었다.

그리스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가 슬슬 비웃음을 날리며 ‘잠깐 좋았냐? 나 없인 넌 안돼 ’ 하며 웃는 것 같았다.

아스클레피오스 그리스 치유의 신


걷다 보면 뒷머리를 정수리부터 누군가가 잡아내리는 느낌.

그 당김이 강해지기 시작하면 나의 육신은 분명 앞으로 걷고 있지만, 발바닥부터 시작해서 점점 보도블록 아래로 잡아다니는 무력한 느낌.     

도저히 버티다 못해 도로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쉰다.

도롯가 벤치에 내가 앉는 경우란 보통 신발끈 맬 때 말고는 없었는데.

쉬더라도 그냥 서서 쉬는데.

그렇게 잠시 머물다 일어서면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이른바 기립성 저혈압 같은 거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불과 2년 전 만해도 매년 건강검진을 맡은 주치의가 고혈압약, 당뇨약, 콜레스테롤 약 등등이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에 있어서, 약을 먹기 시작하거나 선택의 문제라고 했었는데.     

약이란 비타민도 안 먹고 감기약도 증상만 떨어지면 복약을 않는 내겐 정말 여지없이 거부감이 일어서 약을 타도 안 먹었었는데.

올 초 검진 때는 혈압, 인슐린, 콜레스테롤 모두 정상치라고 해서 외려 의아했었는데.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가서 도저히 힘들다고 했다.

계속 정수리부터 끌어내리는 느낌. 팔의 전완근이 굳은 느낌. 

나도 모르게 뭘 잡으면 자꾸 떨어트리고 집중해서 뭘 집을 때 헛손질하는 느낌. 

그리 자전거를 타고 온종일 걸어도 생전 다리에 쥐가 난적은 없는데 종아리 근육이 굳는 느낌. 

이 무더위에 소름이 돋는 느낌.     


- 혹시 자율신경실조증이 온건가요?

물었다.

- 엄....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요.

- 선생님. 그렇다면 만약, 내가 그간 사업 하느라 휴가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고 육아를 하느라 일주일에 쉰 날도 없는데 맘먹고 한 2주? 정도 약도 끊고 일도 끊고 늘어져 쉬면 좀 좋아지지 않을까요?

- 엄.... 그건 좀 어려울 겁니다. 이게 약도 서서히 끊어야 하고 또......   

  

의사 샘이 뭐 라건 내 머릿속에는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병원 단골이 끊길까 봐 페인트 치는 건가. 아니면 자신도 잘 몰라서 그러는 건가. 그나저나 나이도 어린데 왜 의사는 늘 선생先生님으로 불러야 하나. 나보다 먼저 태어난 거 아닌데.

그냥 미쿡처럼 Dr(닥털)하면 안 되나. 나도 PhDr인데 말이다.     

별수 없이 새로 조합된 약을 받아왔다.

지겹다.

약에서 벗어나려 지식창고를 뒤져보면 또 한의사 혹은 민간요법 장사꾼들의 광고성 블로그가 판을 친다.

에잇, 더러운 세상. 자본적이며 유물론적인 세상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이 더위에 소름이 돋더니 오늘은 또 땀이 미친 듯 솟아나나.

아스클레피오스!

나 하고 합의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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