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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Aug 06. 2024

한강 특파원 뉘우스

한강 특파원 뉘우스     


자율신경실조증 약 기운이 떨어지니 온몸이 추욱 쳐집니다.

약을 먹기도 지겨워서 마음먹고 땡볕 라이딩에 나섰습니다.

몇 번 경험해 보니 약 기운 떨어진 것보다 현실 라이딩이 더 고생스러우면 약 먹을 일도 잊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게다가 오늘은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자출 한답시고 가진 브롬이 중 가장 묵직한 놈을 끌고 왔습니다. T 라인에 익숙해진 팔뚝이 무겁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좋은 점도 있습니다. T 라인은 가벼워서 약간의 요철에도 방정맞게 톡톡 튀는데, 얘는 무거워서 꿈쩍도 안 합니다.

T 라인이 스포츠카 같다면 익스플로러에 리어렉, 킥스탠드까지 달고 가방까지 묵직하게 얹어 놓으면 거의 트럭입니다.

이 무거운 놈을 끌고 사무실이 있는 디지털단지에서 도림천을 거쳐 안합-월드컵대교-행주산성으로 향합니다.     

날이.... 아.....

인적도 드문 데다, 한강 사업소에서 편의점 개량사업 어쩌고 때문에 알던 편의점들이 문 닫은 데가 많군요.

거참. 그래도 임시라도 좀 열어놓게 해 주지……. 쪄 죽을 거 같습니다.

그늘도 거의 없는데 바람조차 없어서 그야말로 군시절 지옥의 행군이 생각났습니다.

최대한 기어를 저단으로 하고 케이던스로 천천히……. 천천히…….

그러면 바닥의 열기가 또 찜통 같네요. 고단으로 막 밟으면 바람은 그래도 시원하나 몸에서 열이 나고.     

그런데 재미있는 것들이 보이고 느껴집니다.

평소 잘 몰랐던 숲이 익는 냄새.

초록초록한 숲에서 약간 밟힌듯한 풀의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봄가을에는 알 수 없는.

무르익은 여름에만 알 수 있는, 마치 호박잎 찜 같은 냄새.

군 시절 행군 때 느끼던 그 냄새가.

뜨거워진 눈을 식혀주는 진하디진한 초록의 향연.

강북 자도 중에서 팔당 가는 길보다 더 진하게 우러나는 녹빛의 바다.

그리고 당최 아무 가게도 안 보이는 숲. 고양 들어서는 입구에 고양이가 있네요.


문자 그대로 고양시의 고양이인지.

중성화도 안 되어있는, 잘해야 한두 살? 청춘 고양이입니다.

바위 위에 팔자로 늘어져 자는 걸 깨워 추르를 주는데 잔뜩 경계하고 안 먹어요.

평소 츄르 얻어먹어 본 길냥이 들은 츄르 냄새만 맡아도 없는 애교 있는 애교 다 떠는데, 얘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가끔 마주치는 길고양이용으로 츄르를 갖고 다니거든요. 먹이도.

영 귀찮은 표정의 냥이에게 ‘바위에 짜놨으니 먹어~’ 하고 가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행주 초입 갈림길에 자전거 카페에서 시원하게 레모네이드 한 잔 마시고 길 건너 메밀국숫집에서 시원한 물메밀국수를..... 하고 희망에 찼는데 두 군데 다 문을 닫았습니다.

아……. 편의점도 거의 없는데 이 무슨.     

어찌어찌 문 연 집을 찾아 시원한 판 메밀을 먹고 공연히 근처의 자전거 의류 판매장들을 기웃거립니다.

너무 더위서 시간 좀 보내고 돌아가려고요.


그러다 슬슬 나서는데 어라? 산성에서 행주대교 방향으로 나 있는 자전거 도로 끄트머리에서 SUV 한 대와 로드 한 대가 서로 박치기라도 하듯 딱 마주 서 있습니다.

가만 보니 부딪친 건 아닌데, SUV는 자전거 의류 판매장 쪽으로 진입을 하던 중 같고 로드는 행주대교 혹은 파주 방향으로 가려고 나서다 자전거 전용도로 볼라드 딱 끝나는 곳에서 서로 으르렁대고 있네요.

SUV 차주는 아예 창문을 올려버렸는데 로드 주인은 한 치 양보 없이 전화 거는 거 보니 신고 중인가 봅니다.

물론 바닥에는 자전거 우선도로라고 마킹이 되어있습니다만.

날도 더운데 서로 미안하다 하고 가면 그만인 걸 굳이…. 싶네요.     

그래도 행주대교 너머 돌아오는 길은 바람이 슬슬 불고, 해도 지고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셈이니 석양을 마주 보며 오는 게 아니라 괜찮았지요.

다만 엉덩이가 아파서……. 쉬엄쉬엄 왔습니다.

익스를 촌스럽게 깔맞춤 한답시고 미니 P바로 하고, 안장을 구하기도 어려운 연두색 브룩스 스왈로우로 했는데 역시 저는 브룩스가 안 맞아요.

그냥 브롬톤 오리지널 안장이 안 아프고 맞더라고요.

브룩스 좋아하시는 분들은 길들면 세상 편하다고도 하시는데…….

저는 길들일 틈이 없이 이것저것 타다 보니.     

돌아오는 길은……. 마주 오는 중딩? 고딩? 들의 떼 라이딩이 많아서 좀 거슬렸습니다.

네버 웹툰 윈드브레이크 때문인지 픽시를 헬멧도 안 쓰고 와리가리 만화주인공들처럼 하는 애들이 많아요.

아쉽게도 얼굴은 웹툰에 나오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아~주 먼 애들이라.

다리 길이도 그렇고.

그럭저럭 어두침침해지는 길로 돌아왔습니다.

덥고, 후달렸지만 한강 자도 변의 새로운 자연을 보아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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