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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섯 번째 바꿨다.
정신과에 관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근 3년이 다 되어가니, 칠 개월에 한 번은 바꾼 셈이다.
루틴은 늘 비스름하다.
여기서 진료를 받으면 내 머릿속을 엉클어놓은 생각을 좀 정돈할 수 있을까?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마치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첫 장면처럼 처절한, 기관총 세례 같은 생각들이 좀 지워질 수 있을까?
그리곤 투덜거림 혹은 고해성사와 엇비슷한 원인과 과정과 현재를 생판 처음 보는 무심한 표정의 의사에게 5분 안에 나열한다.
처음에는 아이패드 같은 장치에 톡톡 그렇다, 조금 그렇다, 덜 그렇다. 아니다 이런 유의 4지선다 문답지를 작성한다.
그러면 의사는 그 결과를 보고 마치
- 무슨 음식을 좋아하세요?
- 짜장면을 좋아합니다
- 아 그렇군요. 당신은 짜장면을 좋아하는 ‘유형’입니다
이런 식의 ‘상담’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약 처방을 받아서 약을 며칠 먹어가며 혹은 어지러움과 혹은 이명과 혹은 입마름 같은 것들을 부차적으로 겪어보고 다시 진료.
- 약이 어땠어요?
- 좀 어지럽고 잠도 중간에 깨고 가끔 뒷골이 땅겼어요
- 아, 그렇군요. 해당하는 약을 좀 줄이고 바꿔보죠
그렇게 또 일주일. 다시 진료.
- 좀 어떠셨어요?
- 네, 뭐 그다지 (개 같았지. 이 사람아)
- 마음을 좀 긍정적으로 갖고 스트레스를 피하도록 하시지요.
- 네, 뭐 그래야죠 (그럴 수 있으면 내가 여기 앉아 있겠나 이 사람아)
결국 겪고, 다시 겪어보면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게 보통 7개월 정도인 듯싶다.
‘ 오늘은 저 친구가 어떤 약을 팔아먹으려고 할까. 내가 말하는 증상을 이해는 하는 건가? ’
지극히 사무적이고 (당연히 사무이긴 하다) 지극히 권태로운 표정을 보면 의사와 환자가 아니라 마치 원치 않는 영업사원과 마주 앉아 있는 모양새가 된다.
그러면 또 다른, 뭔가 좀 새롭고 정말 도움이 될 병원은 없을까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또 엇비슷한 루틴을 반복하다 보면, 처방된 알약들만 봐도 뭘 넣고 뭘 뺐구먼. 이거는 좀 안 좋던데. 여기 의원이 이 제약사와 거래하는구먼. 이런 식의 사고가 돌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서 ‘ 이런 게 진짜 병 아닌가? 의심증? 강박증? ’ 이런 생각도 든다.
그렇게 흐르고 흘러 다섯 번째 병원을 찾았다.
생각해 보면 앞서의 병원들은 대개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만 종종거린 게 사실이니까.
뭐 인터넷 정보를 절대 신뢰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다면 솔깃하는 게 또 사람인지라.
다섯 번째가 되니 태블릿 판에 4지선다를 하는 속도도 눈부시게 빨라졌다.
침침해진 눈으로 작은 글씨가 안 읽혀도 알아서 툭툭 터치할 정도로 숙련도가 높아졌다.
그렇게 진료를 혹은 상담을 받다가 무심코 의사가 내 상의 포켓을 가리키며 묻는다.
- 말보로 피세요?
- 아, 네. (당황. 찔림)
- 말보로 레드 피세요?
- 아. 네. 제가 술을 못해서 못 끊고 있네요 (뻘쭘. 궁색)
- 아뇨. 아뇨. 저도 말보로 레드 피우거든요. 사실 담배 보다도 술이 더 안 좋습니다.
오. 갑자기 사무적이며 삭막하던 진료실이 화기애애해졌다.
진료 중이 아니라면 ‘ 우리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며 얘기합시다 ’ 하고 싶었는데.
어쩐지 이 병원에선 다 좋아질 거 같은 생각이 든다.
의사가 믿을만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