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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Jul 17. 2023

내 친구 피아노

"도레미파솔라파 미레도 도레미파솔라파 미레도 솔파미솔파미레 솔파미솔파미레 도레미파솔라파 미레도"

계이름을 부르며 마지막에 환한 미소를 띤 여자 아이가 화면에 비춘다. 그리고 야**라는 피아노 광고가 끝이 난다. 내가 어렸을 때도 이 피아노 광고를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1악장 곡으로 "도미솔 시도레도 라솔도 솔 파솔파미파미~" 피아노에 옥구슬 굴러가면 그런 소리를 낼까 싶을 정도로 맑고 경쾌한 피아노곡과 함께. 그 광고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 저 피아노를 가지고 있으면 나도 저렇게 칠 수 있겠구나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언니가 먼저 교회 집사님이 운영하시는 피아노 교습소를 다니기 시작했다. 다섯 살 때부터 초3까지 주산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던 나는 언니가 피아노를 배운다고 하니 질투가 생겼다. 그리고는 나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겠다고 부모님께 조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6년 동안 배우고 있던 주산이 엄청 재미없어지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던 같았다.


내게 피아노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한 피아노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피아노에 진심이었던지라 하루라도 빨리 "도레도레도레~~"를 마치고 양손으로 빠르게 칠 수 있는 체르니로 넘어가고 싶었다. 나의 바람이 간절했는지 아니면 나의 연습이 충분했는지 드디어 내가 원하던 체르니 100번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 체르니를 시작한 내 귀에 들려오는 연주곡이 하나 있었으니  "미#레미#레미시레도라~"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이었다. 저 곡은 도대체 무슨 곡이길래 애절하고도 슬프면서 아름다운가. 들리는 소리를 따라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고 있는 피아노학원 언니 옆으로 갔다. 그 옆에 꼭 붙어서 한참을 바라봤다.  난 언제 저 곡을 연주해 볼 수 있을까라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레슨을 해주시면 레슨 해준 대로 연습이 끝나면 바로 끝내지 않고 조금 더 연습에 연습을 했다. 초3 때 시작한 피아노는 실력을 쌓고 쌓아 드디어 체르니 40번에 도달했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물론이고 모차르트, 바흐 인벤션, 찬송가, ccm송 등 이제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대충 들으면 웬만한 곡은 연주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아노 원장선생님께서는 겨울 방학 즈음에 피아노 학원 학생들 전체 발표회를 하자며 연습을 아주 많이 시키셨다.  말로만 들어보던 피아노 연주회. 물론 피아노 대회는 아니었지만 공주님처럼 멋진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아름답게 피아노를 치는 연주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그때 내가 연주할 곡은 야** 피아노 광고에 나온 바로 그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1악장이었다. 전체 곡을 암기해서 연주해야 했기 때문에 틀리지 않고 연주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게다가 원장선생님은 연주회 순서 제1번으로 나를 넣어주셨다. 연주회 첫 곡을 연주하게 되다니 원장선생님께서 특별히 나를 생각해 주신 것은 아닌가라는 혼자만의 착각도 하게 되었다. 연주회에서 내 무대는 총 두 번이었는데 독주는 모차르트 곡으로 하고 원장선생님의 딸인 언니와는 연탄곡(한대의 건반 악기를 두 사람이 함께 치며 연주하기 위해 만든 곡)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피아노 연주회 당일날. 원장선생님께서는 연주회 전까지도 드레스를 대여하지도 않았고 대여하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그냥 단정하게 옷을 입고 하자고 하셨다. 하지만 이왕이면 나는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연주하고 싶었다. 아무리 엄마께 온몸으로 예쁜 옷을 입고 싶다고 졸라도 엄마는 아무 반응도 없으셨다. 그래서 난 그날 평소에 입었던 밤색 바지와 빨간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도 하얗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싶었는데... 어쩌면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연주회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르고 졸랐지만 엄마의 반응은 무반응이었다. 그런 엄마의 반응은 어린 시절의 날 참으로 슬프게 만들었다. 아무튼 그날의 연주회는 무사히 잘 마쳐졌고 난 나 혼자만이 아는 한 가지 실수 외에는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잘 연주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모차르트라고 생각하며.


피아노 실력은 늘고 있었지만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다. 그래서 늘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교하고 난 후 집에 오니 검은색 영*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부모님은 나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깜짝 선물을 해주신 것이었다. 그렇게 가지고 싶은 피아노였지만 너무 조심스러워서 첫날은 피아노 덮개만 조심히 열어볼 뿐 차마 연주를 하지 못했다. 부모님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짝이는 피아노 건반을 보니 자연스레 손가락이 그 위에 살포시 놓였다. 그 후 난 그 시절 유행했던 가요 악보,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맥가이버 OST 등 수많은 악보들을 모아가며 열심히 연주했었다. 내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면 엄마는 안방에 누워서 내가 연주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곤 하셨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영어와 수학공부를 해야 해서 자연스레 피아노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피아노 연주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교회 반주로 이어졌다. 중등부 성가대 반주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3학년을 제외하고 4년 가까이를 매주 주일마다 연주회 대신 교회 예배 때 반주를 했다. 대학교 때는 저녁 예배 성가대 반주와 찬양단 건반까지. 그러고 보니 나의 어린 시절과 결혼 전까지 함께했던 피아노는 내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낮은 도에서 높은 미까지 손가락이 잘 닿지 않는 것을 보고 그 꿈은 진작 접어야 했다. 나도 남들처럼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낮은 도에서 높은 미까지 다른 건반들은 닿지도 않고 연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을 아무리 길게 뻗어봐도 손가락 사이만 아플 뿐. 남들보다 짧고 뭉툭한 손이 그렇게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예전만큼 손가락이 잘 움직여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헤드셋을 끼고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흐름으로 가끔씩 연주하곤 한다.  3년 전 박은빈과 김민재가 주연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는 <슈만, "어린이의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를 혼자 음악에 취해서 연주하고 또 연주하곤 했다. 그렇게 연주했던 피아노를 이제는 우리 딸들이 연주하고 있다.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가져다 놀 수는 없지만 아쉬운 대로 디지털피아노를 구입해서 가끔씩 연주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딸들도 나처럼 피아노를 아주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나만의 꿈이었을까. 그렇게 흥미를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딸은 엄마 때문에 억지로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 어릴 적 피아노 건반을 따라 음악을 들으며 연주하고 그 시절에 만났던 예술의 경험과 음악의 풍요로움을 나중에라도 우리 딸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unsplash



세번째 이야기는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피아노를 참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는 제가 피아노를 잘 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제 실력은 그 정도는 아니었더라구요. 하지만 그 시절 피아노를 연주하며 들었던 음악들로 인해 제 인생은 조금 더 풍요로워졌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악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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