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우 Jul 23. 2023

당신의 덕질은 무엇인가요

내가 좋아하는 가수

요즘 TV나 라디오, 혹은 우리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면 가사가 워낙 빨라서 무슨 가사인지 못 알아 들어서 몇 번이고 들어봐야 하거나 가사를 확인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그나마 우리 딸들이 좋아하는 아이유 노래는 가사가 제법 괜찮기도 하고 잘 들리기도 한다. 아이돌 가수라고 하는 K-pop 노래들은 이제 내가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구나를 깨달았을 때 나도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 소위 나이 든 사람에 속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했다. 그들의 노래는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구나. 물론 무조건 나이 든 사람이라고 해서 요즘 노래를 안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MZ세대처럼 요즘 노래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 귀가 시끄럽다고 느껴지는 노래는 우선은 자동 off를 하고야 만다. 하지만 이런 나도 청소년 시절에는 우리 부모님들이 귀 시끄럽다고 하는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코요테 등 댄스가수 노래들을 즐겨 부르곤 했다는 사실이다. 귀가 시끄럽다는 것은 이건 세대를 넘어서 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보다.





중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가요계의 어린 왕자, 라이브의 황제 이승환이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미성과 그리고 그의 내면 속에 가득 담긴 롹감성까지 그야말로 가요계의 어린 왕자라는 수식어가 참으로 어울렸던 가수라고 생각했다. 이승환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내가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이승환을 좋아했는지.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우리 반 실장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부실장이었는데 나중에 부실장이 이승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누가 더 이승환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자부심 대결이 있었는데 갑자기 쉬는 시간에 부실장이 나에게 와서는 노래 가사가 적힌 연습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어. 이거 내가 직접 만든 가사야. 어때? 괜찮아?"


힘들게 보낸 나의 하루에
짧은 입맞춤을 해주던 사람
언젠가 서로가 더 먼 곳을 보며
결국엔 헤어질 것을 알았지만
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중략>


친구가 보여준 가사는 대략 이러했다. 중학생이 직접  쓴 가사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야! 거짓말하지 마. 네가 이걸 지었다고? 그냥 이승환 노래 아니야? "

친구는 머쓱한지 내게 웃음을 지었다.

"어. 맞아. 근데 이거 이승환 새로 나온 노래야.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라고."

"그래? 그럼 그렇게 말했어야지. 근데 언제 나왔어?"

"음. 나온 지 얼마 안돼. 이번에 오태호와 함께 작업한 이오공감이라는 앨범에 나온 노래야."

"그래? 나도 얼른 앨범 사야겠다."

부실장은 나보다 먼저 이승환의 새 앨범을 알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별거 아닌 일에도 우리는 이승환 가수를 두고 경쟁을 했다.


용돈이 모이면 음악사에 가서 이승환의 앨범을 모조리 사는 게 취미였다. 정규앨범부터 공연 라이브 앨범까지 내 책상 책꽂이 한편에는 이승환의 앨범들로 하나씩 채워져 갔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이승환의 노래는 내 귓가를 맴도는 배경음악이 되어갔다. 게다가 그 시절에 김기덕 아저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두 시의 데이트>에서는 방학특집을 해주었는데 방학 동안 매일 게스트들이 초대돼서 2시간 동안 DJ와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해주었다. 나는 달력에 매일매일 출연되는 게스트들을 적어놓고 방송까지 녹음해서 고이 간직하는 열성 팬심을 보였다.


중학교 3학년 영어시간이었다. 무척이나 졸리고 나른했던 5교시. 우리 중학교에는 랩실이 있었는데 칸막이가 되어 있으니 선생님 모르게 졸기에는 딱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내 자리는 안타깝게도 선생님 바로 앞자리였다. 졸려도 잘 수가 없는 그 자리에서 겨우 졸음을 쫓아내 가며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영어선생님께서는 졸음을 깨는 의미로 친구들의 노래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그 순간 정적을 깨는 아이들의 함성소리.

"와! 좋아요!"

"그럼 누가 먼저 노래를 해볼까?"

노래 부르기는 학생들의 자원이 아닌 선생님이 지정하면 노래를 불러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건 잘못 걸리면 마이크를 켜고 아주 생생히 친구들이 낀 헤드폰으로 그들의 귓가에 내 목소리를 정확히 전달하는 노래를 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실수를 해도 너무나 명확하게 들리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신다.

"네?"

갑자기 내 머릿속이 하얘진다.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엔 이 상황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잠깐 고민하던 순간 이승환의 노래가 생각났다. 높은음이 별로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래를 골라봤다. 내가 부른 노래는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었다. 나는 분명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건만 랩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내 작은 목소리와 숨소리는 선생님과 내 친구들 귓가로 아주 선명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헤드폰을 타고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이어갔다.


여전히 내게는 모자란 날 보는 너의 그 눈빛이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알 수 없던 그때
언제나 세월은 그렇게 잦은 잊음을 만들지만
정들은 그대의 그늘을 떠남은 지금 얘 긴 걸
사랑한다고 말하진 않았지 이젠 후회하지만 (중략)


그러나 이 노래에는 복병이 하나 있었으니 정확한 끝맺음이 없다는 것이다. 계속 후렴구가 돌고 돌아 마지막 fade-out을 하면서 끝나는 노래인 것을.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이름과 그대의 얘기와 지나간 내 정든 날 사랑은 그렇게 이뤄진 듯해도 이제와 남는 건 날 기다린 이별뿐"


여기까지 노래를 부르고 나니 끝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난감해졌다. 내 노래가 끝이 났다고 생각한 친구들과 선생님은 박수를 쳐줬지만 난 몇 번을 돌고 돌아서 노래를 끝냈다. 노래의 끝을 생각 안 하고 노래를 선정한 내 실수였다. 어쨌든 노래는 끝이 났고 내 얼굴은 아주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로 난 학교에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가수는 이승환을 넘어 전람회(김동률), 이적으로 갈아탔다. 갈아탔다는 의미가 좀 이상하지만 이승환도 좋아하고 김동률, 이적을 더 좋아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열심히 가수를 좋아했으니 그 열심을 공부에 더 보태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팬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하고) 멜로망스, 박재정, 폴킴 등. 이제는 특정 가수의 팬이 되기에는 나의 에너지가 풍족하지 않다. 두루두루 노래를 좋아하는 것일 뿐.




요즘 우리 딸들은 아이유를 넘어 이제는 뉴진스를 좋아한다. 포토카드도 누구한테 얻었는지 나름 포카도 몇 장 가지고 있고 핸드폰으로 또는 태블릿을 헤드폰에 연결해서 노래를 듣기도 하며 노트에 가사말을 예쁘게 적어보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처럼 가수 앨범을 산다고 돈을 소비하지 않는 거다. 다른 아이들은 새로운 포카를 계속 모으기 위해 똑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사기도 하고 당근마켓을 통해서 포카 거래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돈으로 소비하지 않고 나름 소심하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팬심을 보여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이승환을 좋아한다고 음악사에 가서 앨범과 가요 악보 사는 것으로 용돈을 소비했던 나를 두고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혼내지 않으셨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나의 덕질을 알면서도 묵묵히 기다려주셨던 것이었다. 그렇게 열심을 보인 덕질도 공부를 해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덕질을 잠시 내려놓고 공부할 것이라는 것을 부모님은 믿고 계셨던 것일까? 이젠 내가 우리 아이들을 믿어줘야 할 때이다. 때론 가끔 과제 안 하고 아이돌 가수 노래를 듣거나 노래 부를 때에도 화를 내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덕질을 지지해 줘야겠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이란 노래제목처럼 나에게 뿌려진 부모님의 사랑만큼 이제는 내 아이들에게 사랑을 뿌려줘야겠다. 무시무시한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겠지만.



학창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이승환 이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덕질도 했구요 . 지금도 좋아하는 가수가 있냐고 물어보신다면 이제는 가수가 아닌 좋아하는 노래가 있지요. 시간이 흘러도 좋아하는 노래는 여전히 좋습니다. 이승환의 노래도 좋지만 요즘에는 멜로망스, 박재정 노래를 좋아합니다.




이전 04화 내 친구 피아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