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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Jul 10. 2023

비 오는 미술관, 그리고 소개팅

미술관.

결혼 전에는 기회만 되면 미술관을 다녔었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문외한이었지만. 방학 때는 일부러 서울에 가서 관람도 하기도 했고 유럽에 갔을 때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도 미술관에 가서 피카소의 그림과 샤갈의 그림을 관람했었다. 시간 날 때면 후배와 미술관 근처에서 식사도 하고 특별히 보고 싶은 전시회가 없더라도 미술관에 그냥 가보곤 했다. 그림을 보며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림이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감상하면 될 터이니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작품 그 자체로만 느끼는 것도 참 좋았다.




20대 시절 어느 날 여름 장마기간이었던 것 같다.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잠시 솔로였을 때 나의 연금보험을 담당했던 아저씨가 보험관리차 방문하면서 내게 갑자기 자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남자친구 없으시죠? 한소개해 드릴 테니 만나보세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그런데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마음의 준비가...."

"사람은 만나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예요. 크게 부담 가지지 말고 한번 만나봐요."

"그분도 제가 담당하는 고객이라서 가끔 만나 뵙는데 괜찮은 분인 거 같아요. 제가 연락처 알려드려도 되죠?"

"생각 좀 해보고요."

"제가 여러 고객들을 만나봐서 아는데 정말 괜찮은 것 같아서요. 그아버님이 교장선생님이시고 선생님과 나이도 비슷해서 잘 맞으실 거 같아요. 저는 사람을 소개할 때 그냥 안 해요. 예전에 제가 소개해준 사람들도 잘 만나고 그랬답니다. 저를 한번 믿어보세요."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이라는 말에 갑자기 안심이 되고 마음이 조금 끌린 것일까? 연금보험 담당아저씨답게 그 사람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이라는 든든한 기본보장을 깔고 이야기한 까닭에 한번 만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머지 그 사람에 대한 부분은 선택보장이라 내가 직접 만나서 결정해야 할터였다.

"네.... 한번... 만나볼게요. 소개해주세요."

"그럼 제가 그분한테도 이야기해 보고 괜찮다고 하면 선생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소개팅이 성사되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보험아저씨의 연락이 없었다. 혹시 그분이 싫다고 하셨나? 아니면 보험아저씨가 그분한테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만날 생각이 없다고 하던 내가 어느새 소개팅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감감무소식이었던 보험아저씨의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제가 일이 있어서 바로 연락 못 드렸네요. 그 남자선생님께 이야기했더니 좋다고 하시네요. 제가 연락처 드렸으니 조만간 연락이 갈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그 사람도 나를 만나보겠다고 했다니.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나에 대해 어떻게 말을 했길래 만나본다고 했을까? 아니면 보험아저씨의 적극적인 소개에 어쩔 수 없이 한번 만나본다고 한 걸까? 별의별 생각으로 내 마음이 뒤숭숭했으나 만남을 주선해 준 연금보험아저씨가 마웠다.




띵동!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어? 혹시 하는 마음에 얼른 핸드폰을 들었다. 앗! 그 사람이다. 주말에 만나자며 괜찮냐고 물어본다. 물론 나도 좋다고 했다. 이게 뭐라고 떨린담. 구 남자친구와의 헤어짐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 또 다른 만남에 설레고 있는 나라니 참 알 수 없다.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다. 장마기간이라 그런지 밖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빗길에 운전하러 나가는 날 보시며 걱정하셨다.

"비가 많이 오는데 괜찮겠어?"

"그럼, 조심히 나갔다 오지 뭐. 그리고 약속을 미루기도 뭐 하고. 잘 다녀올게요."

빗속을 달리는 차안에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약속장소인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둘러보니 식당 안에는 다른 사람들로 가득할 뿐 혼자 앉아 있는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그 사람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출입문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그때 마침 저 멀리 혼자 걸어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키는 크고 안경을 쓴 정장 바지를 입은 남자.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완전 훈남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 남자도 나를 보고서는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다가온다.

"늘 만나기로 했던 선생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그렇게 우린 어색한 인사로 첫 만남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만난 우리는 파스타를 선택했고 우리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 없는 학교 이야기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가 끝나가자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혹시 갈 만한 곳 있을까요?"

"글쎄요. 비가 와서 밖으로 나가기는 좀 힘들 것 같고. 음. 이 근처에 미술관이 있는데 갈래요?"

"네. 좋아요."

첫 데이트에 각자 자신의 차로 이동하기에는 그래 보였는지 그 남자는 자신의 차로 미술관에 가자고 했다.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따라 한 20여분을 달렸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비가 내린 탓에 미술관 안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찬찬히 걸어가며 작품을 보려고 하지만 자꾸 그 사람이 거슬렸다. 미술관에 오자고 한 사람이 나였지만 제대로 관람도 못하겠고 그 사람의 마음도 전혀 모르겠는 이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기만 했다. 괜히 미술관에 오자고 했나? 나는 미술관이 좋은데 이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냐? 영화관을 갔어야 하나? 홀로 머릿속이 바빠졌다. 전시실을 나와서 우린 잠시 앉기로 했다. 미술관 복도에는 기다란 의자가  있는데 그 의자에 앉으면 커다란 창가를 통해 보이는 경치가 예술이었다. 밖은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내 옆에 그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은 오로지 내 시간이었다.


르릉! 갑자기 울리는 그의 전화기 소리.

그가 전화를 받는다.

"네. 어머니"

순간 그 사람이 엄마라고 했는지 어머니라고 했는지 잘 분간이 가지 않지만 발신자는 분명 그 사람의 어머니였다.

"네? 아직 만나고 있어요."

엥? 아직 데이트도 안 끝났는데 확인전화를 하신 건가? 궁금해서 전화를 하신 걸까? 순간 이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소개팅이 끝나지 않았는데 중간에 확인을 하시는 부모님이라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지?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고 이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다. 이 사람한테 호감이 있었던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내가 만약 이 사람과 만난다면 그의 어머니가 중간에 이렇게 확인을 하시겠지?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이라고 하셨는데 집안 분위기가 너무 엄한 것은 아닐까? 그럼 안되는데 하며 전화 한 통화에 내 머릿속은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그는 이제 그만 나가자고 했다. 사실 미술관에서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그와 내가 맞는 부분이 있을까 궁금했다.

"퇴근하고 나면 주로 뭘 하세요?"

"주로 저는 게임을 해요."

"아. 네. 게임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아뿔싸. 이 사람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게임을 좋아하는 남자를 정말 싫어했으므로 이번 소개팅을 이후로 다시는 안 봐도 될 거라 생각했다. 다시 내 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 그가 내려주며 말했다.

"조만간 리 다시 만나요."

"네. 그래요." 

무미건조한 대답을 하며 조심히 가시라 했다. 그리고는 그의 회색 코란도가 유유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소개팅을 마치고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만나자는 그 남자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나도 이 만남엔 미련조차 없었다. 가 싫어하는 게임을 좋아하는 남자, 그리고 소개팅 중간에 전화를 하는 그의 어머니. 그때의 내가 그 남자에게 연락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에 가면 가끔 그날의 소개팅이 생각날 때가 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말들만 오고 갔던 소개팅.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이었지만 비 오는 미술관에서의 그때의 느낌은 온전히 기억한다. 큰 통창에서 보이는 빗줄기를 기다란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던 그 순간을. 비록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에서 그리 좋지 못한 소개팅 기억이지만 비가 내리는 여름날 그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경치를 바라보고 싶다.

 



어쩌다 보니 동물원 이야기 다음 미술관이네요. 미술관 옆 동물원도 아니고...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덕분에 미술관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관,  비 오는 날의 미술관을 참 좋아합니다. 미술관을 생각하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글을 적어봅니다. 여러분도 미술관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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