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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Jul 09. 2023

우리, 동물원 갈래?

대학 3학년.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보다 첫 데이트로 들뜬 내 마음이 저 파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갈 거 같은 어린이날. 우린 학교 동아리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휴일이라 아무도 없는 그 건물을 들어선 순간 복도를 울리는 건 내 신발 소리뿐이었다. 학생회관 3층 제일 끝 방. 닫혀 있는 문 앞에 서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조금 늦게 출발했나?'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지났지만 아무도 없는 동아리방에서 그를 기다렸다. 창밖은 유난히 조용했고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따사로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다다 다다.

복도에서 누군가 달리는가 싶더니 문이 열리며 그가 환하게 웃었다.

"미안해요. 좀 늦었죠?"

"괜찮아. 나도 방금 전에 왔어. 뛰어왔나 봐?"

"네. 버스를 늦게 타서 좀 늦었어요."

나를 만나기 위해 뛰어왔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얼마나 뛰었는지 그의 이마는 벌써 땀으로 젖어있었다.

"선배, 우리 어디로 갈까요?"

"음, 우리 동물원 갈까? 오늘 어린이날이니까 동물원에 가보는 게 어때?"

"동물원이요? 그래요. 동물원으로 가요."

우린 그렇게 어린이도 아닌 대학생 둘이서 어린이날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시내버스를 타고 동물원으로 향했다.


동물원은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야말로 어린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손을 꼭 잡은 부모들로 인산인해였다. 비록 동물원에 들어가기까지 긴 줄로 인해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우리들은 기다리는 그 시간마저도 즐거웠다. 사실 동물원에 가고 싶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까 대학로에서 데이트는 할 수 없었고 아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장소로 넓은 곳을 찾았을 뿐이었다. 동물원에 언제 와봤을까? 한 번도 그동안 동물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는데 그와의 첫 데이트를 동물원에서 하다니. 아마 다른 연인들이라면 놀이공원을 선택했을 거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을 장소라면 놀이공원도 꽤나 넓지 않은가. 하지만 복잡하고 스릴 넘쳐나는 놀이공원보다 조용하고 조금은 한가한 동물원이 좋다. 왜냐하면 그와 천천히 걸으며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고 무섭고 공포스러운 놀이기구를 그 사람 앞에서 억지로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난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놀이기구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행히 놀이공원을 가자고 하지 않고 동물원에 동의해 준 그가 고마웠다.


동물원 곳곳은 어린아이들 소리로 가득했다. 초록빛 잔디 위에 펼쳐진 은빛 돗자리와 맛있는 음식들, 형형색색 헬륨 풍선을 손에 쥐고 걷는 아이들,  사진기를 향해 다양한 포즈를 만들며 추억을 담아내는 가족들, 몽글몽글 바람에 날아다니는 비눗방울들에 비친 일곱 색깔 무지개 속에서 알 수 없는 설렘이 느껴졌다. 어린이날이라서 그런지 모두가 다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우리도 행복했다. 코끼리, 사자, 호랑이, 기린... 새삼 놀라울 것도 없는 동물들을 그와 함께 걸으며 보고 있으려니 그 모든 게 재밌고 신기했다. 사자가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누워서 자는 모습, 코끼리가 음식을 먹는 모습, 원숭이가 나무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 물속에 잠긴 하마가 하품을 하는 모습들을 보며 우린 열심히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맘껏 웃었다.


그로부터 3년 뒤.

그때 그 시절 그와 첫 데이트했던 그 동물원에서 현재 남편과 첫 데이트를 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돌이켜보니 첫 데이트 장소가 같은 건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묘한 일이다. 풋풋하고 싱그럽던 대학생 시절 5월 어린이날의 추억과 긴 장마가 지나고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의 남편과 만남의 장소가 동물원이어서 참 좋다.


천천히 동물원을 산책하다 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처음으로 손을 꼭 잡았던 그 순간. 가슴은 쿵쾅쿵쾅 그에게 들릴지 모를 방망이질을 수없이 해댔던 순간. 더운 여름날 꼭 잡은 두 손에 땀이 비록 날지라도 절대 놓을 수 없었던 그 시절. 지금도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난 놀이공원이 아닌 동물원을 또 선택할 거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동물원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생각해보니 동물원이었어요. 설레는 첫 데이트. 누군가는 신나는 놀이공원이었을지 몰라도 저의 취향은 동물원이랍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데이트 장소는 어디인가요?



*사진출처: pxhe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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