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르면 안 돼요? 나 수학문제집이랑 사회, 과학 문제집 사야 할 것 같은데..."
"그래? 알았어. 서점에 가보자."
예전에는 문제집을 엄마인 내가 직접 골라서 막내딸에게 풀어보라고 권했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사주지 않는다. 몇 년 동안은 1년간 풀어야 할 문제집을 미리 사서 풀게 했더니 이런 엄마의 일방적인 지시에 불만을 가졌던 딸은 이제는 풀지 않겠다 선언했었다. 딸의 불만을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듯해서 작년부터는 문제집을 일방적으로 사주지 않았었다. 이번 2학기에는 딸이 아무 말도 없기에 문제집을 풀지 않을 작정인가 했는데 본인도 슬슬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문제집을 직접 고르겠다고 했다.
서점에 도착하니 책이 가득한 서점 그 특유한 향이 콧속으로 퍼진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서점에서 느낄 수 있는 책들의 향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서점 문을 열자마자 문제집 코너를 찾아가는 딸을 뒤쫓아가 본다. 딸은 자신이 풀 만한 문제집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열심히 살펴본다. 이제는 제법 문제집을 보는 눈도 생긴 듯하다. 처음에는 엄마인 내가 추천한 것들을 중심으로 보더니 딸은 자신이 직접 여러 가지 문제집을 펼쳐 보며 비교도 하고 자신이 풀 수 있는 수준의 것인지도 확인한다. 역시 책은 본인이 선택해야 후회가 없고 끝까지 문제집을 풀 수 있는 힘도 생기는 듯하다. 딸은 한참을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문제집 2권을 골랐다. 한 권은 수학문제집이요, 또 한 권은 사회 문제집을 골랐다. 너무 어려운 수준의 것이 아닌 쉽고 잘 풀 수 있는 문제집을 고른 것 같았다. 딸은 우선은 개념을 익히고 쉬운 단계부터 문제를 풀고 싶다고 했다. 지난 1학기에는 어려운 문제집을 고른 것 같다며 풀기가 조금 힘들었다고 말했다. 계산을 하려고 나오려는데 신간 코너 앞에서 딸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25권' <정도전 편> 었다. 이번에 새롭게 26권도 출간되었는데 딸은 지난번에 사지 못했던 25권을 사고 싶어 했다. 우리 집에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이 1권부터 24권까지 있다. 다른 책들은 몰라도 설민석의 한국사는 전편을 가지고 싶어 하는 딸이기에 잠시 책을 가만히 들고 침묵을 하고 있는 딸의 표정을 읽은 나는 그 간절함을 들어주기로 했다. 딸은 문제집을 사기 위해 자신의 용돈을 챙겨 왔었는데 미리 생각하지 못한 한국사 책까지 사기에는 돈이 부족했다. 열심히 공부하고자 문제집을 산다며 나를 서점까지 이끈 딸의 기특한 생각 때문에 문제집 2권은 내가 결제하기로 하고 한국사 책은 딸의 용돈으로 계산하기로 합의했다. 계산을 마치고 기분이 좋아진 딸은 3권의 책을 두 팔로 꼭 안으며 서점 밖으로 나갔다.
딸이 선택한 문제집과 한국사 대모험
차를 출발하고 주차장을 나서는데 뒷좌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은 차에 타자마자 설민석 한국사 책 내용이 궁금했는지 비닐을 뜯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책 읽으려고?"
"네. 책을 빨리 읽고 싶어서요."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읽으면 눈에 안 좋은데.. 멀미도 나고..."
"괜찮아요. 처음에는 어지러웠는데 이제는 차 안에서 책을 읽어도 괜찮은 거 같아요. 조금만 읽을게요."
집으로 향하는 내내 딸은 도착할 때까지 열심히 책을 읽었다.
집에 도착한 후 딸은 언니와 오빠에게 책을 샀다며 자랑을 했다.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시리즈를 좋아하는 우리 집 삼 남매는 책 앞으로 모여들었다. 딸은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집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책을 모두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수학문제집과 사회 문제집도 학교에서 배운 곳까지 풀고 틀린 것은 채점까지 마쳤다고 했다. 역시 학습은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할 때 큰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동안은 엄마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짜 맞춰진 스케줄에 맞춰 아이들이 따라 해 주길 바랐다. 그래야만 학습이, 배움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에게 그 공을 넘겨야 할 때인 거 같다. 작년에 이은경 선생님의 <초등 자기 주도공부법>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이은경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초등 공부의 주도권은 부모가 먼저 잡고 천천히 아이에게로 넘겨야 합니다. "
공부의 주도권을 적어도 5학년쯤부터는 아이주도로 하나씩 넘겨줘야 한다고 했었는데 올해 5학년인 막내딸이 이젠 스스로 자기 주도로 공부하고 싶어진 걸까? 제발 이 마음이 변치 않고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엄마가 계획하고 주도하는 공부가 아닌 이제는 스스로 스케줄을 작성해 보며 자기 주도적으로 하나씩 학습을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끔 숙제와 할 일을 진작 마친 딸이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일부러 '더 해야 할 것 없어?'를 반복하며 물어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조금 더 책을 읽어야 하는데...', '조금 더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데..', '저렇게 많이 게임하면 안 되는데...'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쉴 때가 많았다. 이런 공부 조급증에 걸린 엄마가 아이의 공부 정서를 마치지 않나 싶다. 이제 막 시작한 딸아이의 주도학습이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지켜봐 주며 조금씩 앞으로 더 성장할 딸의 미래를 응원해주려고 한다. 아직 공부 마라톤의 시작도 하기 전 딸이 지치지 않도록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봐주어야겠다. 공부는 속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라했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달릴 수 있도록 돕는 부모가 되고자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