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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Aug 19. 2023

서울대 가는 법

4월 초 토요일 아침, 기차를 탔다. 기차의 목적지는 영등포역. 정확한 목적지는 서울대학교다. 영등포역에서 내려서 2호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탈 예정이다. 이유는 딸아이의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에서 주관하는 중학생 실험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 체험을 위해 예약시간 맞춰 얼마나 재빠르게 클릭을 했던가. 별것 아닌 거 같지만 서울대학교에서 하는 체험이라 인기가 있어 일찍 마감이 된다. 제시간에 맞춰 광클릭을 한 까닭에 다행히도 딸은 원하는 날짜에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토요일 오후에 있을 체험을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던 것이다. 아들과 막내딸까지 함께 갈까 생각했었지만 올해 초 겨울방학에 먼저 아들이 2일간의 실험체험활동 할 때 다 같이 왔었던 터라 이번에는 둘째만 데리고 나섰다.


4월 초지만 여전히 아침 공기는 쌀쌀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기차 안은 역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드디어 영등포역에 도착. 오후 2시 수업 시작인데 11시쯤 영등포역에 도착한 딸과 나는 영등포역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김밥, 국수, 햄버거, 돈가스, 가락국수, 혹은 백화점 지하 내의 음식코너를 고민하던 끝에 간단히 먹기로 결정하고 가락국수와 김밥을 먹으러 작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작은 탁자가 몇 개씩 놓여 있었고 식당 안에는 주문하는 소리와 음식을 만드는 소리 외에는 정말 조용했다. 왠지 떠들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우리는 점심을 빨리 먹고 나왔다.


이제는 지하철을 타야 하는 시간.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야 한다. 딸은 지난번에 한번 갔었던 터라 어떻게 가야 하는지 대략 기억하고 있었다. 영등포역에서는 지하철 2호선을 바로 탈 수 없으므로 1호선을 탔다가 신도림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정신없이 걷다가 혹시 잘못된 방향으로 갈까 싶어서 몇 번을 확인한 후에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엄마, 얼마나 가야 도착해요?"

"여기 지하철 노선도를 봐. 우리는 지금 신도림에서 출발했거든. 이제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아볼까? 목적지가 서울대입구역이니까 지하철역을 몇 번 지나야 할까?"

"음.. 그러면 신도림에서 7번째 정거장이 서울대입구역이네?"

"그렇지. 지하철 한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가 짧게는 1~2분에서 길게는 몇 분 정도 걸리는데 아마도 20여분쯤 지나면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아.. 다리 아프다. 앉을자리도 없고.."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빽빽이 차 있어서 손잡이를 겨우 잡고 서서 가야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더니 서서 가는 것이 지속되니 딸은 힘들어했다. 하긴 지방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렇게 타고 다닐 일은 거의 없으니 힘들었을 것이다. 정거장 몇 개를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틈을 타 우리는 빈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왔다. 이제는 버스를 타야 한다. 서울대로 가는 버스 중에서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는 5513번 버스다. 버스 정류장에는 5515번, 5513번, 5511번 버스정류장이 나란히 있었다. 줄을 잘 서려면 길바닥에 있는 버스 번호를 잘 봐야 한다. 지난번에는 타야 하는 곳을 잘 못 봐서 다른 곳에 줄을 섰었다. 다행히 지난번의 경험으로 이번엔 5513번 버스 정류장을 잘 찾았다. 버스는 우리가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착했고 녹색버스를 타고 서울대로 향했다.


수업 시작은 오후 2시인데 아직도 1시간 반 가량이 남았다. 남은 시간에 뭘 할까 하다가 서울대학교 기념품 샵에 들르기로 했다. 기념품샵에는 우리처럼 서울대학교 기념품을 사려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필통, 볼펜, 샤프, 지우개  등 여러 가지를 구입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샤프 종류와 A4파일을 사고서는 밖으로 나왔다. 아직 여유 시간이 있어 서울대 메가커피에 들러 차를 마시고 수업시간이 다 되어 딸을 수업하는 강의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우리를 비롯해서 여러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강의실 안은 조용했고 밖에서 서 있는 부모들은 강의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밖으로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수업시간은 총 3시간이어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특별히 갈 곳도 없는 터라 밖으로 온 나는 학생회관에 있는 교보문고로 향했다. 교보문고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너무 작지도 않았다.

서울대학교 교보문고

1시간가량 이런저런 책들을 둘러보다가 강남지하쇼핑상가로 향했다. 강남지하상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복잡했고 상가 앞마다 한국인들보다 외국인이 많이 있는 곳들도 있었다. 정신없이 맘에 드는 옷을 골라 겨우 계산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4시 30분. 수업이 5시에 끝나는데 다시 서울대입구역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도 타야 했으니까. 급히 서둘러 다시 도착한 건물입구. 나 외에 다른 학부모들도 하나둘 아이들을 기다리기 위해 1층 로비에 모이기 시작했다. 5시가 넘어 나타난 딸의 표정을 살폈다.

"수업은 어땠어?"

"재밌었어요. 실험도 재미있었고."

"그래? 같은 조 친구들은 괜찮았어?"

"네. 나처럼 중1도 있었고 언니 오빠들도 있었고."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다음에 체험활동 있으면 또 오고 싶어?"

"네. 할 수 있으면 해야죠."

"그래. 알았어. 다음에는 방학에 하는 활동을 해보자. 이제 집으로 가야 하는데 저녁을 학생회관에서 먹고 출발하자.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니까."

그렇게 우린 서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메뉴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서울대 구성원들은 3천 원, 일반인은 4천 원짜리 메뉴였다. 식당 안에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우리처럼 일반인들도 많이 있었다. 메뉴는 미소된장국, 오므라이스, 김치, 진미채조림, 당면과 야채가 섞인 무침이었다. 특별히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서울대에 와서 실험도 하고 학생식당에 와서 밥도 먹으니 그야말로 서울대 체험을 제대로 한 기분이었다.

서울대학교 학생식당에서 먹은 저녁식사

"이제는 서울대 몇 번 와봤으니까 서울대 가는 방법 잘 알겠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요?"

"오. 그래? 엄마가 고등학교 때는 서울대 가는 게 꿈이었었는데 너희들 때문에 이렇게라도 자주 와보네."

"서울대 오는 게 쉬운데 왜 못 왔어요?"

"이렇게 오는 거 말고. 서울대에 들어가려면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해야 하고 시험도 잘 봐야 했으니까. 너희들은 미리 와봤으니까 다음에는 실제 서울대학교 학생이 돼서 여기서 공부했으면 좋겠네."

"에이. 여기 와보니까 밥도 **대학교 밥보다는 별로인 것 같은데.."

"학생식당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고 학교 안에 여러 개가 있는데 오늘은 이곳에 와서 밥을 먹은 거야. 다른 식당들은 다른 메뉴들로 더 맛있을지도 모르지."

딸을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는 서울대학교 체험활동을 통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으라고 데려왔건만 이런 엄마의 마음은 모르는 딸은 학생식당의 밥맛으로 학교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서울대학교이몽이다.

"처음에는 서울대학교라 신기했는데 몇 번 와보니 어렵지 않게 올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렇지. 서울대에 가려면 KTX 타고 지하철 타고 버스 타면 언제든 갈 수 있지. 그런데 이렇게 오는거 말고 실제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대한 로망을 가져보는 게 엄마의 바람이라는 거 알까? 예전에는 어떻게든 서울대에 보내려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의대에 보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세상이다. 네가 진짜 원하고 바라는 것을 찾아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야 엄마로서는 바랄 것이 없단다라고 말하지만 엄마의 쓸데없는 야망을 아직은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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