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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Aug 04. 2023

여름방학, 삼시 세 끼는 계속된다

아침부터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여름방학을 맞아 세 아이가 모두 집에 있노라니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차려내는 일이 힘겹다. 나도 여름방학이라 좀 쉬고 싶은데 아이들과 똑같이 쉬어야 하니 방학이 아닌 일터가 집으로 바뀌었을 뿐 내 몸이 쉴 수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다. 더운 날 불 앞에 서서 음식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가스레인지가 아닌 전기레인지라 감사해야 할 판국이다. 거실에 에어컨을 켜놓지 않은 터라 식사를 준비할 때는 땀이 흐르곤 한다. 잠시 잠깐을 위해 에어컨을 켜자니 전기세 걱정이 먼저 든다. 아이들은 아이들 방에서 에어컨을 켜고 하루 종일 지내고 있는지라 여기저기 모든 집안의 에어컨을 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한 몸 희생하고야 말겠다는 신념하에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잠을 실컷 자는 주말에는 하루에 삼시 세끼가 아닌 두시세끼로 줄일 수가 있다. 아점으로 한번, 이른 저녁으로 한번. 중간에 배고프다고 라면을 먹을 시에는 똑같이 세 번의 상차림이 된다. 하지만 이건 어쩌다 있는 일. 웬만하면 빵과 우유, 과일로 간식을 버텨본다.


오늘도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챙겨야 하는 엄마인 나는 마음속으로는 배달음식을 외쳐보지만 감당 안 되는 물가상승률에 배달음식값도 만만치 않아서 집에 있는 식자재들을 쭉 스캔해 본다. 일명 냉장고 파먹기를 해볼 심산이다. 야채칸이 있는 재료들과 냉장실에 있는 재료들을 살펴본 후 음식 메뉴를 정했다. 양파 몇 개와 남편이 언제 사다 놓았는지 모르는 시금치, 잡채용 돼지고기 한 팩, 찌개용 돼지고기 한 팩, 두부 2모, 송이버섯, 표고버섯, 오이고추, 어묵 2 봉지.

먼저 잡채용 돼지고기와 시금치가 있으니 당면 잡채를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선 당면 잡채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다행히 당면잡채가 한 끼 먹을 양이 있다. 없으면 이 더운 날 사러 가야 하는데 다행이다. 남은 당면 모두 털어서 물에 불리고 시금치는 데쳐서 참기름과 약간의 간장으로 무쳐놓았다. 몇 개 남지 않은 오이고추가 있길래 길쭉하게 잘라 놓고 당근 2개도 길쭉하게 썰어놓았다. 오이고추와 당근을 소금으로 간을 한 뒤 프라이팬에 간단히 볶아놓고 잡채용 돼지고기는 설탕과 간장으로 볶는다. 마지막으로 불린 당면은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웍에 넣고 참기름과 간장, 설탕으로 버무렸다가 당근, 오이고추, 시금치를 모두 넣어 맛있게 섞어 완성!  먹음직한 잡채가 뚝딱 만들어졌다. 날은 더워서 내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다음엔 어묵볶음 차례. 어묵을 봉지에서 꺼내 뜨거운 물로 잠깐 데치고 물기를 뺀 뒤 네모모양으로 썬다. 약간의 청양고추와 간장, 설탕,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물로 양념장을 만들어 프라이팬에 바글바글 끓인 다음 어묵을 넣고 볶아내면 어묵볶음 완성. 매콤하고도 단짠 어묵볶음이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찌개용 돼지고기 한팩, 두부 2모, 남아 있는 버섯과 양파들을 모두 넣어 김치찌개를 끓였다. 돼지고기와 잘라놓은 김치를 냄비에 기름을 둘러 충분히 볶아내고 물과 버섯, 채소들을 모두 넣어서 한소끔 끓어오르면 마지막으로 두부와 파를 넣고 보글보글 끓어내었다. 별 것 아닌 메뉴지만 1시간 안에 세 가지의 음식을 하고 아이들에게 먹이니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배달음식을 시키지 않아도,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이지 않고도 내 손으로 더위를 이겨내며 만들어낸 음식이라니 생각만 해도 뿌듯했다. 더구나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며 식탁으로 쪼르르 달려와 김치찌개와 잡채로 밥을 두 그릇씩 먹는 것을 보니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낸 것 같은 느낌이다.


매일매일이 오늘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더운 여름날 내 아이들 건강을 위해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름방학 동안 삼시 세끼의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중간중간 먹을 것 없냐며 졸라대는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낮 더위쯤이야 보름 정도 고생하면 폭염은 물러갈 테고 여름방학도 아쉽게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나도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 이제 방학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개학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심정이란. 영양만점에 급식메뉴도 다양한 학교급식이 이렇게나 그리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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