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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May 09. 2023

맛있는 갈비찜의 비밀

봄날 기운인 건지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퇴근 후 힘없이 집에 돌아온 상태로 식탁 앞에 앉았다. 저녁을 해야는데 정말이지 저녁준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메롱한 정신상태와 기운 없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내 새끼들.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지금 많이 배고픈데.. "

"언제 밥 먹어요?"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라면으로 간단히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 싶었으나 그 마음을 고스란히 접어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속을 뒤지니 지난번 남편이 사다 놓은 소고기 갈빗살이 보인다.

"그래, 오늘 저녁은 이걸로.."

갈빗살이지만 뼈가 없이 고깃살로만 되어 있어서 조리하기에 어렵지 않아 보였다.


먼저 핏물을 제거하기 위해 찬물에 담가놓고 몇 번을 헹구어 압력솥에 넣었다. 갈비 양념장을 만들어 넣어야 했으나 예전에 사다 둔 갈비양념장이 생각났다. 아하. 이렇게 쉽게 갈비를 만들 수 있게 될 줄이야. 나의 시간과 고생을 덜어줄 만능소스 등장에 갑자기 힘이 솟았다.


고기와 채소, 만능소스를 넣고 압력솥뚜껑을 닫았다. 이제는 압력솥 추가 돌고 적당한 시간 동안 익히기만 하면 되었다. 압력솥에 넣으니 시간도 단축되고 고기도 무척 부드러워져서 아이들 먹기에 딱이었다.


"얘들아. 저녁 먹자."

"와~ 맛있는 냄새나요."

코를 킁킁대며 두 딸들이 식탁으로 조르르 달려 나왔다.

"오늘은 갈비다. 엄마가 잘라 놓을 테니 먹어."

"어? 근데 난 뼈 잡고 뜯고 싶은데 뼈가 없네?"

고기를 쑥 훑어보더니 뼈 잡고 뜯어먹기를 요구하는 막내가 원조 갈비를 찾았다.

"이번엔 갈비뼈는 없고 먹기 좋게 갈빗살만 있단다. 뼈가 없으니 먹기는 더 좋을 거야".

조그만 녀석이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어 할 줄이야.

아무튼 나와 아이들은 갈비찜 접시를 식탁 한가운데에 놓고 맛있게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엄마, 고기가 맛있어요."

다른 반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연신 아이들의 젓가락은 갈비로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그래. 나 편하자고 라면 안 하길 잘했어. 이렇게 금방 갈비찜을 해서 먹을 수 있는데 말이지.'

냠냠 쩝쩝 정신없이 고기를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엄마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다한 거 같아 흐뭇했다.


어느새 압력솥 가득했던 갈비찜을 거의 다 먹자 아이들은 배가 부른 지 하나둘 자기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내놓은 빈 그릇을 보니 집에 왔을 때의 멜랑꼴리 한 기분은 사라졌다.


식탁을 정리하고 압력솥에 고기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아보려고 하는데 솥 안에 하얀색 무엇인가가 떠올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하고 국자로 뜬 순간.

허걱.

흡습제였다.

솥 안에 고기는 몇 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고 흡습제 상태를 보니 가운데 부분이 터져있었다.

어찌한담. 고기 핏물을 제거할 때도, 아이들에게 고기를 건져줄 때에도 흡습제는 보지 못했다. 흡습제는 그럼 어디에 있다가 이제 떠오른 것일까? 이제껏 맛있게 먹었던 갈비찜은 흡습제도 같이 우려낸 국물로 요리되었단 말인가. 뱃속으로 들어가 버린 고기를 빼낼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도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흡습제 : 육류에는 흡습제를 사용하는데 대부분 종이처럼 생겨서 고기 중간에 끼워넣는 형태로 흡습제의 역할은 drip예방과 고기가 서로 붙어서 변색되는걸 막아주는 역할을 함.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고기팩 흡습제 요리'라고 검색하니 나와 같은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고기를 구울 때 흡습제를 같이 구웠어요. 어떻게 하죠?''고기를 삶았는데 흡습제를 넣고 삶았어요.'등등의 질문에 답변은 '아깝지만 버리세요.'라는 답이 제일 많았고  '흡즙제 안에 들어있는 물질은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니 괜찮아요.'라고 하는 답변도 있었다. 먹기 전에 발견했더라면 나도 과감히 음식을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이미 맛있게 먹어버렸다. 어찌 됐는 이걸 알게 된 이상 남은 음식을 처분해야 했다. 내가 먹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가장 많이 먹었단 사실에 정말 찝찝하고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지금 당장 큰일이야 나지 않겠지만 좀 더 신경 써서 음식을 했어야 했는데 피곤하다는 핑계로 잘 살펴보지도 않고 너무 대충 했나라는 생각이 들자 나 자신에게 화도 났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결국 남아있는 몇 점의 고기들을 건져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미 먹은 고기는 어쩔 수 없다. 토해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늦게 집에 도착한 남편이 물었다.

"저녁 뭐 먹었어?"

"어. 당신이 지난번 사다 놓은 갈비 먹었어."

"오~ 잘했네."

"그렇지? 맛있게 먹었어. 갈비찜."

'그리고 흡습제도 같이 우려서 먹었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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