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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Apr 22. 2023

자기야, 내일 뭐 먹어?

요알못 여자의 간단 메뉴

지난해 겨울날 아침의 일이다.


“아침밥은 뭐야?”

교복 셔츠 한쪽이 까진 채로 식탁에 앉으며 아들이 물었다.

“짜장밥.”

“어제도 먹었는데 또 먹어?”

“일단 그냥 먹어. 학교에 빨리 먹고 가야 하잖아. 짜장밥 먹으면 간편하지.”

화장을 하다 말고 전자레인지에 짜장 소스를 데워 식탁 위에 놓았다. 아들은 짜장 소스를 밥 위에 얹었다. 그리고는 짜장을 비벼 반찬도 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늦어도 8시에는 현관 밖으로 나가야 하는 아들은 그렇게 급하게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한 후 정신없이 학교로 향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여유롭게 밥을 먹으면 좋으련만 꼭 아침잠을 10분만 더 고수하는 아들은 정신없이 5분 만에 아침을 먹고 나간다. 급하게라도 아침을 꼭 먹고 가는 아들이 좋기도 하지만 출근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나에게는 아침밥을 차리는 일이 솔직히 귀찮다. 어떤 중학생들은 아침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나간다는데 우리 아들은 꼭 식탁 앞에 앉는다. 밥을 안 먹으면 공부시간에 집중할 수 없다나. 그래. 아침을 먹고 나가는 게 어디냐. 밥을 먹고 나가야 뇌가 활동하는데 좋은 거지. 아무리 간단한 메뉴도 아침을 먹어주는 아들이 참 고맙다. 아무튼 나는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해야 하지만 아들은 꼭 챙겨줘야 하기에 늦은 밤이라도 다음 날 아침 메뉴는 미리 생각해야 한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잠시 여유 있는 시간.

“내일 아침밥은 뭐야?”

귤을 까먹으며 무심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말을 걸었다. 남편이 툭 내뱉은 한마디에 갑자기 마음이 뒤틀렸다. 주방 마감을 막 마친 데다 이제 겨우 쉬고 있는데 내일 아침 메뉴가 뭐냐니. 잠시 여유를 부리고 싶은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시는지.

“어제 만든 짜장 아직 있어.”

“짜장을 내일 또 먹으라고? 어떻게 3일 동안이나 같은 음식을 먹어? 지겹게.”

“냉장고에 있는 음식부터 다 먹어야지. 어차피 먹을 음식인데.”


내 이야기는 흘려들으며 냉장고 속을 뒤지는 남편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3일 동안 같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거지. 쳇. 그것도 아침에 간단히 먹고 나갈 음식인데 말이다. 일부러 짜장을 많이 만들어 아침 메뉴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 건데 같은 음식이라며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달라니 말이다. 밀려오는 짜증을 밀어내며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딱히 특별한 재료가 없다. 어젯밤 남편이 마트에서 사다 놓은 돼지고기 한 팩, 조만간 물러버릴 것만 같은 양파 몇 개. 도마를 올려놓고 양파들을 무자비하게 썰었다. 큰 냄비에 식용유 두르고 양파를 모두 쏟아부었다. 카레엔 역시 양파지. 다른 재료는 과감히 패스. 고기와 양파만 듬뿍 들어간 카레. 내일 아침 메뉴다.

“당근은 안 넣어?”

불쑥 들어온 남편의 참견. 아까부터 내 속을 뒤집는 남편이 한마디 또 건넨다.

“진짜 맛있는 카레는 양파가 많이 들어간 카레야. 다른 재료는 없어도 돼.”


한 솥 가득 휘휘 저어 만든 카레로 2일 정도를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고 뿌듯했다. 역시 음식은 많이 해놓아야 할 일이 적다. 사실 이렇게 많이 만들어놓아도 애가 셋이라 먹으면 정말 한순간 뚝딱이다. 그런데 그다음 메뉴가 또 고민이다. 음. 냉장고엔 아직도 신김치가 많은데. 우리 딸들이 김치볶음밥을 아주 좋아하지? 그럼 내일은 김치볶음밥을 해야겠다. 김치볶음밥도 한 냄비 가득 볶아야 하겠지?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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