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데이트
아들이 미래 여자친구에게 해줘야 할 일들
남편이 출근하고 딸들마저 등교한 1월 하고도 세 번째 날. 늦잠을 자고 있는 아들을 겨우 깨웠다. 오늘은 아들하고 나만 유일하게 지낼 수 있는 하루. 뭘 해야 이 특별한 날을 즐길 수 있을까? 아침 일찍 카페에 가야 여유롭게 있을 수 있을 듯해서 간단히 빵과 우유로 식사를 마치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 그런지 카페는 다행히 한산했고 2층에는 테이블 몇 자리만이 손님들이 있었을 뿐 앉을자리는 충분히 많았다.
나는 자몽 허니 블랙티, 아들은 말차 라테. 작은 케이크 하나 시켜서 자리에 앉았다. 사춘기 아들과 카페에 단둘이 온 것은 처음인지라 좀 어색했지만 나는 오래간만에 독서를, 아들은 공부를 했다.
시간이 지나자 큰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나가고 우리는 자리를 그쪽으로 옮겼다. 특별히 좋은 경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탁 트인 창가 옆으로 앉으니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그러자 갑자기 이 자리에 아들 대신 남편과 함께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그러다 문득 나의 머릿속은 연애시절의 일들을 떠올렸다.
내가 남편과 카페에 자주 왔었던가? 아니다. 한 세네 번 정도 가본 거 같다. 왜 우리는 카페데이트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난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고 남편도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먹는 건 주스 정도? 연애를 5년 가까이했는데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카페에 자주 가지 않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다. 카페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특별히 불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 번도 그런 거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 않았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제 와서 좀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뭔지.
사실 카페에 간다는 건 차만 마시기 위해 가지 않는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도 하고 카페마다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분위기를 느껴보기도 하고 좋은 경치도 보러 가는 일일 건데. 난 왜 카페 데이트 할 생각은 하지 않았던가.
앞에 앉아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몇 년 후면 저 녀석도 여자친구가 생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엄마로서 아들에게 미래의 여자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아들, 너도 조만간 여자친구가 생길 건데 여자 친구가 생기면 이런 카페도 자주 가고 그래. 알았지? 남자는 말이지 다정다감해야 해. 여자 친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듬직함도 있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해. 그리고 여자 친구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해. 경치 좋은 곳에서 데이트도 해보고 종종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꽃도 선물해 줄 수도 있어야 한단다. 그렇다고 아무 여자를 만나서도 안되고... "
(이하 중략)
아들은 뜬금없이 자신의 미래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데요?"
"너도 나중에 데이트 할거 아냐? 이런 걸 알고 있어야 데이트도 잘하고 여자친구도 널 좋아할 거 아니겠어?"
아직 있지도 않은 미래의 여자친구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어떤 여자를 만나야 하는지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놓으니 아들은 빨리 일어나고 싶어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들이 미래의 여자 친구에게 해야 할 일들은 그동안 내가 남편과 하고 싶었던 것들, 받고 싶은 것들, 서운한 것들이었다.
결국 이 말들은 남편이 들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