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공부를 한다고 2주 정도부터는 문제집도 풀고 나름대로 열심히 스케줄을 짜서 공부를 한 모양이다.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학교에 지각할까 싶어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를 여러 번 했을 정도였다.
지난 2학기 중간고사 때 너무나도 아쉽게 1점 차이로 친구와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시험 점수에서 졌던 아픔이 있었기에 이번 기말 시험이 아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하고 또 잘 봐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아들은 꼭 친구를 이기고 싶어 했다.
아니, 이겨야 했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지만 성적으로 한 번이라도 꼭 이겨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늘 친한 친구의 뒤편에 서는 것이 은근 스트레스였다 보다. 아들의 이러한 마음을 알게 되니 부모로서도 한 번쯤 아들의 소원대로 이겨봤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한 핏줄의 힘이 아니겠는가. 학원 선생님들도 아들의 마음을 느끼셨는지 아들의 소원을 한마음으로 응원해주셨다.
기말고사 시험을 마친 아들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그 이유인즉슨 국어에서 쉬운 문제인데 문제의 조건에 맞게 쓰지 못해서 틀렸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답의 내용은 틀리지 않았으나 조건에 맞게 쓰지 않아서 부분 점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의 실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도덕 주관식에서도 필수 단어를 제외하고 썼다. 아고 이 자식.
과학은 모르는 것이 있어서 틀리고, 영어는 어려운 문제 신경 쓰다가 시간 내에 급하게 푸는 바람에 주관식 문제에서 조동사 뒤에 동사원형을 쓰지 않고 s를 붙여서 틀리고.
이건 뭐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나름 완벽했을 시험이 실수로 인해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장 실망한 것은 본인이었겠지만 머릿속으로 열심히 점수를 계산하는 내 속은 타들어갔다.
"이 녀석아! 그러게 시험 준비를 제대로 했어야지. 실수로 틀린 것이 도대체 몇 개야? 검토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이게 뭐야! 실수도 실력이라는 말 모르니? 친구를 이겨보겠다며!"
화를 참지 못한 나는 결국 아들에게 마음속에 있던 말을 퍼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서부터 기분이 안 좋았던 아들은 엄마에게서조차 꾸중을 들으니 울듯한 얼굴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아들은 백점을 맞은 과목도 몇 개 있긴 했다. 그런데 엄마인 나에게는 시험을 잘 본 과목의 점수가 보이는 게 아니라 시험을 못 본 과목의 점수만 보였던 것이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남편에게 아들의 시험 결과를 이야기해주었다. 남편은 아들의 시험 결과가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스스로 열심히 해서 이 정도면 된 거지 않냐며 아들을 두둔했다.
사실 아들은 지난 1학기 첫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할 때 어떻게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라서 정말 힘들어했다. 그런 아들이 짠했던 엄마는 시험 기간 내내 함께 공부해야 했다. 교과서도 같이 읽어보고 문제집에서 모르는 문제, 틀린 문제도 함께 풀어야 했다. 보고 또 봐도 외워지지도 않는 역사책을 같이 읽어주고 요점 정리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잠도 쫓아가며 공부했던 아들은 첫 번째 중간고사 결과를 받아보고 엄청나게 뿌듯해했다. 자신이 원하던 등수 안에 들었다며.
원하던 등수 안에 들고 자신감을 얻었던 아들은 이제는 엄마의 도움 없이도 혼자 알아서 시험공부를 했던 것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시험기간 내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기특한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인 나는 부족한 아들의 모습에 억누를 수 없는 화를 터뜨리고 만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화를 왜 낸 것일까. 가장 속상한 사람은 아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나의 속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들이 받아 온 시험 점수가 꼭 내가 받은 시험 점수 같다.
그랬다. 아들의 점수는 곧 내 점수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국민학교 시절에 난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다.
(잘난척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매달 시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나? 시험을 보기 전에 엄마는 내게 올백을 맞지 않으면 학원을 못 다니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난 6살 때부터 주산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주산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았던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런데 어찌하랴. 올백은커녕 시험에서 몇 개를 틀리고 말았던 것이다.
시험지를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고민하며 집에 조용히 들어온 나는 아무도 없는 부엌에 들어가 가방을 멘 채로 한쪽 구석에 서서 눈물만 뚝뚝 흘렸었다. 울고 있던 나를 발견한 엄마는 밥 먹으라며 방으로 데리고 가셨다. 하지만 엄마는 괜찮다, 그래도 잘했다는 말은 해주시지 않았다. 다행히 학원은 계속 다니게 해 주셨지만.
그 뒤로도 어떻게든 엄마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던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중학교 때였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전교생이 지나다니는 중앙 계단 복도에 커다란 칠판이 걸려있었다. 그 칠판에는 항상 시험이 끝나면 전교 1등부터 전교 20등까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맨 앞에 1등에는 내 이름이 적혔다. 전교 5등인가 10등 안에 들면 학교에서는 장학금을 봉투에 넣어주곤 했는데 전교 1등을 해서 장학금을 받아 집에 갔던 날, 엄마는 내게 특별한 말 한마디 없이 장학금 봉투를 받아가셨다.
역시나 엄마는 '정말 잘했다', '우리 딸 최고!'라던지 꼭 안아주셨던지 하는 그런 피드백 대신 성적이 떨어지면 더 잘하라는 말뿐이었다. 그 시절엔 얼마나 서러웠던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른 친척들 혹은 동네 지인분들한테는 나에 대해 자랑을 많이 하셨다고. 차라리 내게 직접 따뜻한 말씀 한마디만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저녁을 먹고 난 후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을 아들이 걱정되었다. 뚱한 표정으로 방 안에 앉아 과제를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아까 한 말들이 더욱더 후회되었다.
아들 또한 어린 시절의 나처럼 상처를 많이 받았겠지?
"아들아, 아까 엄마가 화내서 미안하다. 너도 실수를 하고 싶어 했겠니? 시험 결과가 조금 아쉽게 느껴지겠지만 시험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이만큼 결과를 얻은 것도 아주 잘했어. 괜찮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네. 알겠어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듯 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얼마 전 아들에게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요.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친구를 이겨보고 난 다음에 생각해 볼래요."라고 대답했다.
음. 그래. 아들아. 친구를 이겨보겠다는 너의 마음이 기특하구나.
현재 네가 해야 하는 일에서 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나중에 네가 원하는 무언가가 되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