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우 Dec 06. 2022

엄마의 슬픈 유전자

제발 이런 건 닮지 마라 - 엄마의 마지막 소원은...

 아들을 낳았다. 무려 예정일보다도 3주나 먼저 태어난 아이. 몸무게 2.5kg, 45cm의 키.

유난히 까만 머리칼에 두 눈은 꼭 감고 두 손은 꽉 쥔 채로 조용히 누워 언제 젖을 물려주나 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오물조물 입을 움직이던 귀여운 아이. 내 품에 쏙 들어가다 못해 잠겨버리는 아이였다.

그랬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을 참아가며 처음으로 낳은 아들. 보기만 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공부, 운동, 명예, 돈 그 무엇보다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내 옆에서 이렇게만 쑥쑥 잘 자랐으면 하는 게 엄마의 가장 큰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 소원은 일주일도 안돼서 바뀌고야 말았다.


산부인과에서 3일을 머문 후 제대로 된 산후조리를 위해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 한방 산후조리원으로 옮겼다. 건물은 중형급 병원으로 4층 높이에 다른 병실까지 같이 운영하던 곳이라서 산모들이 있던 산모동은 3층으로 그곳은 산모들을 위한 안식처였다. 반면에 진분홍 바탕에 커다란 꽃그림이 촌스럽게 크게 박혀있는 단체 임부복을 입은 산모들이 밤낮없이 "따르릉" 울리는 다급한 응급전화에 수척하고 푸석해진 얼굴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질 틈도 없이 수유실로 곧장 출동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수유실에 앉아 아들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는 순간 다른 신생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곧장 난 깨달았다. 우리 아들이 정말 작다는 것을.

옆에서 모유를 열심히 쭉쭉 빨아대는 신생아는 태어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살은 흰 찐빵처럼 포동포동, 다리도 길쭉길쭉, 몸무게도 우리 아이보다 1.5배는 더 되어 보였다.

"아가가 정말 크고 다리가 무척 기네요." 부러운 듯 내 눈은 아가의 발찌에 눈이  갔다. 키는 55cm, 몸무게는 4kg였다. 그야말로 우량아였다

이때부터였다. 내 소원은 "우리 아들 키가 크게 해 주세요."였다.


"작게 나아서 크게 키워라."


이 말은 작게 태어난 아이를 가진 나 같은 엄마들을 위한 입에 발린 말처럼 들렸다. 대단한 위로이고 응원의 말인 듯했지만 거짓말을 예쁘게 포장한 립서비스였을 뿐이었다. 작게 나아서 크게 키울 수 있다고? 적어도 나에겐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말이었다. 뚱뚱하면 살을 빼면 되고 못생기면 성형수술을 하면 된다. 하지만 키는 그렇지 않다. 키는 성장기가 끝나면 정말로 끝이었다. 신랑도 나도 평균보다 키가 작은 편이었기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부모보다는 조금이라도 키가 컸으면 하는 아주 작은 소망을 가졌을 뿐.


아들의 최종 키가 걱정되었던 우리 부부는 아이의 키를 키워보고자 운동도 시켜보고 일찍 재우기도 하고 일부러 식사를 하고 나서 간식으로 빵을 먹여가며 우유를 더 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장 친한 지인의 딸이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시작하자며 졸라대기 시작했다. 당뇨, 부종, 비대, 혈당 상승, 갑상샘 기능 저하, 척추측만증, 뇌압 상승 및 두통 등 여러 가지 성장호르몬 부작용이 걱정되었던 나는 키 작은 아이를 둔 엄마들의 카페까지 가입해가며 정보들을 수집했다.

정말 괜찮은 것인지.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거리들로 머리를 싸매며 몇 개월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갔다 집에 온 아들은 씩씩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며 책상을 탁 쳤다.

"엄마,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데 힘 있고 키 큰 애들이 몰려와서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쳐서 그네도 조금밖에 못 탔어. 내가 안 내리겠다고 하니까 내리라고 소리쳤어. 그리고 우리 반에서 나보다 작은 애들은 거의 없어." 평소에는 키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았던 아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다니 아들도 은근히 스트레스가 된 모양이다. 키가 작은 것도 서러운데 몸집이 큰 아이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그 애들에게 쫓아가고 싶었다. 더 이상 성장치료를 늦추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시기를 놓치면 우리 아들의 키는 여기서 끝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예약을 했다.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엄마, 아빠의 키, 엄마의 초경 시기, 부모의 급성장 시기, 자녀의 최근 3년 치의 키를 적어야 했다. 미리 사전 정보를 입수했던 나는 간호사 선생님이 주신 검사 전 조사 양식을 차근차근 채워나갔다. 몇 분쯤 지났을까.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인사를 하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다란 모니터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아담한 의사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진료실 안이 너무 고요해서 먼저 말을 꺼내면 안 될 정도여서 잠시 몇 초동안 앉아있었다.

 "아이가 평균 연령대에 비해 크진 않네요. 그런데 대부분 키는 엄마, 아빠의 영향을 받는 거라 현재 부모님의 키를 가지고 예상을 하면 예상키는 168cm 정도 나옵니다. 자세한 것은 X-RAY 검사와 피검사 등 자세히 해봐야겠지만요."

사전 조사 검사지를 받아보신 선생님은 눈을 내리 깔고 안경 밖으로 보이는 글자들을 보시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예상키가 170cm도 안된다고? 이 험악하고 키 만능주의 한국사회에서 남자다운 남자로 살아가려면 내 생각엔 적어도 170cm는 넘어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우리 언니의 키며, 남동생의 키까지 물어보셨다. 그런데 남편 쪽의 키는 남편 키만 물어보시고는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왜 모계만 추적하시지? 키가 엄마의 유전을 따른다는 것인가?

다른 곳에서도 아닌 의사 선생님과 상담 자리에서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닌 돌려서 말하는 뉘앙스가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선가 본 기사가 기억이 났다. 아빠의 유전자와 엄마의 유전자 중 어떤 유전자가 키 성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연구가 있는데 분석 결과 엄마 유전자에서 나오는 미토콘드리아 DNA는 키, 수명 같은 신체,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물론 아이는 엄마가 아닌 아빠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쁜 것도 잠시,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성장치료를 받고 싶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부모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했다. 아들은 흔들리는 눈빛을 보내며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아들도 이젠 포기한 듯했다. 주사를 귀신보다도 더 끔찍하게 싫어하는 아들을 붙잡고 나는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성장치료를 그렇게 시작했다.


성장 주사를 매일매일 꼬박꼬박 맞는 것은 엄마도 아이도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다. 주사기를 미리 내놓지 않아 너무 차갑거나 주사를 지방이 많은 부위가 아닌 근육에 맞게 되는 날이면 아들은 짜증을 냈다. 하지만 어찌하랴. 키가 크려면 감당해야 하는 것을. 아프더라도 성장 주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라고 아들에게 무한 반복, 귀에 딱지가 붙을 만큼 이야기하며 아들의 살을 열심히 찔러댔다. 3년 가까이에 걸쳐 성장치료가 이루어졌고 아쉽기만 한 엄마의 마음은 모른 체 비워져 가는 통장잔고와 앞으로의 치료는 성장에 의미가 없다는 무미건조한 의사 선생님 말씀 덕에 끝을 맺었다.


현재 아들의 키는 168cm.

아들의 원래 예상 키에 도달했다. 아들은 앞으로도 천천히 성장할 것이다. 아암, 아직 더 성장해야지. 그래야지. 그렇게 믿고 싶다. 설마 여기에서 멈추겠어?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과 투자한 금액을 생각하면 우리 아들의 키는 꼭 170cm는 넘어야 했다. 하지만 성장 주사를 끊은 초조하고 불안한 엄마는 매일 아침 아들의 키를 재고 또 재고 있다. 이 얼마나 웃픈 현실인가.


아직 나에게는 둘째와 셋째가 있다.

안타깝지만 이들도 엄마의 슬픈 유전자를 닮아 있다.

오빠의 주사 맞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던 막내딸이 곁에 와서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저는 주사 안 맞을래요. 매일매일 열심히 우유 먹고 운동할게요.”

엥? 이 얼마나 기특한 딸인지. 엄마의 딱한 주머니 사정을 알아챈 것일까?

“그래? 그러면 엄마는 좋지. 아마 성장호르몬 주사 맞지 않아도 노력하면 클 수 있을 거야.” 입가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불안한 눈빛을 거둘 수 없는 엄마는 속으로 더 다짐해본다. 그렇지.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다고 해도 모두 다 크는 것은 아니지. 한편으로 또다시 치료를 시작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3년 가까이 힘든 과정을 경험해봤던 터라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차였다.

그래. 엄마가 그동안 지켜보니까 교수님, 의사 선생님, 과학자, 선생님, 연예인 등 멋진 분들 중에서도 키가 작은 사람 많더라. 너희 아빠처럼. 혹시 어찌 아니? 엄마의 슬픈 유전자가 아닌 다른 유전자가 너희를 엄마보다 더 크게 더 멋지게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엄마옆에서 건강하게만 잘 자라다오.


사진출처: 픽사베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