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인해 온 세상이 겨울왕국으로 변해버렸다. 어제 오후 퇴근할 때 혹시나 미끄러질까마음을 졸인 가운데 천천히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니 사람도 자동차도 마비가 된 세상이 되어버렸다.
어젯밤 내일 출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일기예보를 찾아보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며 걱정을 했는데 결국 늦은 밤 전체 카톡방에서는 전면 휴업이라는 결정 통보를 받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학부모님들께 전체 안내 문자를 보낸 후에는 혹시나 연락받지 못하고 내일 아침 스쿨버스를 타러 나오는 학생들이 없을까 하여 우리 반 학생들 단톡방에도 긴급문자를 올려놓았었다.
다행히 휴업처리가 된 나는 출근하지 않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했다. 첫째는 학교가 바로 집 옆이라 한 시간 늦게 등교를 하라는 안내에 따라 9시 넘어서 학교로 향했고 딸들은 도저히 학교에 자동차로 데려다줄 용기가 나지 않아 가정학습을 신청했다.
어젯밤 막내의 논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데려오는 길에 도로에서 3번씩이나 미끄러진 일을 겪어서 눈이 쌓인 도로는 절대로 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은 터였다.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아찔한 경험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밖은 눈발이 날리고 있다. 언제까지 눈이 오려는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원하긴 했지만 이런 경우면 정말 곤란하다. 모두가 즐겁게 즐길 수 있고 아름답게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원한 건데 눈이 내리는 걸 걱정스럽게 바라봐야 하는 크리스마스 연휴는 결코 반갑지 않다. 아마도 내일부터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밖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집 안에서만 있어야 할 것 같다.
오늘 아침 쌓인 눈의 양이 20cm가 넘는다. 이렇게 보면 별로 안 쌓인 거 같지만 실제 밖에 쌓인 눈은 발목 위를 덮는다.
하지만 이 사태를 가장 즐기는 건 당연히 아이들.
학교를 가지 않아 오전부터 열심히 TV 시청, 피아노 연주, 눈놀이를 하며 엄청 잘도 논다. 말이 가정학습이지 가정학습은 뒤로한 채 가정놀이를 하고 있다. 집안에서 나름 열심히 놀거리를 찾아서 즐기고 있는 걸 보니 다행이다. 가정학습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열심히 집에서 공부했다고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쓸지 고민 중이다.
한 시간 늦게 등교를 했던 아들 학교에서는 한파와 폭설로 인해 2시도 안돼서 일찍 하교를 시킨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아들이 30분이 지나도 집으로 안 온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아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 친구 부모님께 전화를 하니 친구는 벌써 집으로 온 상태. 아들은 왜 안 오는지 물어보니 아마도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작업(?)하다만 이글루를 만들고 있을 거라고 아들 친구가 전했다. 이렇게 날도 추운데 이글루라니. 다행히 하교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온 아들이 직접 만든 이글루라며 사진을 보여줬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쌓은 모습을 보니 꽤나 그럴듯한 모습이다.
아들이 친구와 함께 1시간 넘게 학교에서 만든 이글루
오늘 하루 직장을 쉰 남편은 두 딸들과 열심히 요리 중이다. 점심에는 파전인지, 부추전인지 만들어서 같이 먹었는데 지금은 현재 호떡을 만들고 있다. 강력분이 없어서 눈을 맞으며 마트로 달려가 밀가루를 사 오고 이스트가 없어서 이스트도 사 오고 아무튼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며 반죽하고 열심히 만드는 중이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남은 일처리와 방콕놀이를 하고 있다. 날씨가 이러니 음식도 하기 싫고 밖에도 물론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열심히 반죽하고 구우며 온통 집안에 호떡 냄새를 풍기더니 드디어 완성했다면서 식탁으로 초대했다.
왼쪽은 모짜렐라가 들어간 치즈호떡, 오른쪽은 일반 꿀호떡 (호떡 믹스 아님. 직접 제조한 호떡임)
생김새를 보니 나름 괜찮았다. 맛도 딱 호떡의 맛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처음으로 맛본 호떡이다.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간 호떡은 맛이 꽤나 괜찮았다.
"딸! 나중에 아빠하고 호떡 장사를 해도 되겠네?"
"정말?"
"응, 맛있는데?"
이렇게 말해주니 딸의 얼굴에 함박웃음 꽃이 피었다.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딸 너머엔 난리통 속인 주방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지만.
호떡을 맛있게 먹은 두 딸들은 낮에 오빠가 만든 이글루 사진을 보고는 자신들도 이글루를 만들어야겠다며 옥상에서 이글루를 만들고 있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눈을 가득 담아 꾹꾹 눌러서 눈벽돌을 만든 후에 차곡차곡 이글루를 쌓아 올렸다.
옥상에서 수확한 고드름
딸들이 만든 이글루
오늘 하루 가정학습을 하라고 쉬었는데 그깟 가정학습이야 실과수업으로 음식 만들기를 했다고 하면 될 것이고 체육수업으로는 눈으로 이글루 쌓기를, 음악수업으로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하면 될 것 같다. 그야말로 실제 체험하며 학습을 한 완벽한 가정학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