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등교하기 전 아침시간은 그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한 번도 아침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다. 정말 신기하게도. 하지만 여전히 첫째인 아들은 엄마의 기상 외침을 들어야만 학교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작년에 비해 올해는 정말 수월한 편이다. 워킹맘인 나에게 아이들의 아침 기상이란 크나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다. 나 하나도 챙기기 힘든 아침인데 아이 셋까지 챙기려니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어떤 날은 화가 잔뜩 난 채로 출근을 하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교복을 입은 채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치며 7시 40분쯤 나가는 둘째 딸을 보면 언제 저렇게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막내딸이 초등학교 5학년인데 아침잠이 많아 일어나기 힘들어하지만 혼자서 학교 갈 채비를 잘하는 둘째 딸을 보니 막내도 조만간 저렇게 홀로 잘할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여전히 제일 마지막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있는 막내딸을 보니 작년 10월의 사건이 생각이 났다.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아직 여유가 있기에 눈을 잠시 붙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눈을 붙인다고 했는데 눈을 떠서 시간을 확인해 보니 허걱 7시 30분이 넘었다. 이런 큰일이다. 늦어도 8시 1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아들은 아침을 먹고 뛰어나갔고 딸 둘은 아직도 꿈나라다. 열심히 흔들어 깨웠는데도 반응이 없고 미동조차 없다. 분명히 깨우는 소리는 들릴 터. 두 딸은 눈도 뜨지 않는다. 얼른 일어나서 간단히 씻고 밥은커녕 옷이라도 입고 나가야 늦지 않을 텐데 엄마의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딸은 여전히 꿈나라 속을 헤매고 있는 듯했다. 속에서는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 나간다. 만약 지금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 혼자 나갈 거야.”
경고성 멘트로 두 딸을 흔들며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난 이미 나갈 준비를 마쳤고 가방과 신발만 챙기면 되었다.
8시 10분.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다. 오늘은 애들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니 학교에 데려다주겠지.
“아빠랑 학교에 가. 엄마는 나간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소리치며 나왔다.
지각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는 사람이 한다고 했던가. 출발하려는 기차에 타기 위해 헐레벌떡 달리는 사람처럼 매번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야 했다. 현관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학교에 데려다줄 아빠가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8시 28분. 다행히 늦지 않았다. 교실 문을 열자 나보다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스쿨버스가 도착하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실로 들어왔다. 이젠 우리 딸들도 일어나서 아빠 차를 타고 학교에 갔겠지라고 생각했다.
아침 자습 시간.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막내딸 담임 선생님의 전화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이가 학교에 안 왔는데요.”
“네? 학교에 안 왔다고요? 제가 한번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복도로 나와 조용히 빈 교실로 들어갔다. 가슴이 쿵쾅쿵쾅. 손이 부들부들. 아이들이 왜 학교에 안 갔지? 둘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열심히 울리지만 받지 않았다. 이번엔 셋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애들 학교 안 갔어?”
“오늘 학교 안 가도 돼. 스스로 일어나지도 않고 매번 이러잖아. 이것도 습관이야.”
“학교에서 전화 왔어! 빨리 아이들 보내!”
화가 난 나는 버럭 소리 지르고 전화를 뚝 끊었다.
내가 출근한 후에도 아이들을 깨울 시간과 학교에 데려다줄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게다가 셋째는 미니체육대회 하는 날이라고 했다. 이건 남편의 궁색한 변명이다. 본인이 하기 싫었던 거겠지. 아니면 아이들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남편의 의지가 오늘에서야 갑자기 발동한 것일지도. 그런데 왜 하필 오늘에서야 습관을 고치는 건데? 왜?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몰려왔다. 남편에게 배신감마저 들었다. 아침마다 애들 깨워서 서둘러서 집을 나간 일, 출근 시간 늦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과속 운전을 했던 일, 조금이라도 늦은 날이면 주차장에서 건물 본관까지 뛰어간 일,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면 편히 쉬라고 출근하는 길에 내가 아이들 데려다준 일. 그동안 내가 한 것들은 도대체 뭐지? 강제로라도 깨우고 나왔어야 했나? 꼬리에 꼬리를 무슨 생각 때문에 수업하는 동안 내 정신의 반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들 등교 확인 전화를 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학교로부터 전화는 오지 않았다.
몇 달 전 ‘금쪽상담소’를 본 일이 있다. 그때 한 여배우가 상담을 하는데 아이가 지각을 할 것 같으면 택시라도 태우거나 직접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아등바등 등교 준비를 하는 여배우에게 오은영 박사는 이렇게 조언했다. 아이가 늦게 일어나더라도 혼자 버스도 타보고 지하철도 타서 학교에 가야 한다고. 지각을 경험해 봐야 다음에 지각하지 않게 된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일찍 나가야 하는 상황이고 출근하는 길에 아이들을 태워다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지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막내딸도 도착했다. 남편은 오랜만에 집에 오신 시부모님께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하려고 했다. 얼른 남편을 쏘아보았다. 남편은 실실 웃었다. 정말 눈치가 없다. 내 눈초리가 무서웠던지 남편은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막내에게 조용히 물었다.
“학교 몇 시에 갔어?”
“10시 30분. 체육대회는 다행히 3,4교시에 했어.”
딸은 엄마의 속도 모르고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아빠가 참으로 빨리도 데려다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