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해서 걱정이냐 못 놀까 봐 걱정이지!
센터가 폐업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지 보름이 되었다. 맙소사! 솔직히 한 주도 안 돼서 나는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고등학생처럼 실직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하러 가는 발걸음이 이전 보다 더 무겁다! 새 사례를 받지 않으면서 출근하는 날도 줄었다. 버스로 30분 출근이 이렇게 귀찮을 일인가?! 뻔뻔한 내 마음은 이미 짐을 싸서 나와 있었다.
실직의 상실감은 디스크로 인한 찌릿한 통증과 함께 왔었다. 그리고 스테로이드 주사 한 방에 날아갔다. 올여름동안 여러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책상에 오래 앉아있었더니 허리가 경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다 그 신호가 강해져 결국 정형외과에 갔다. 몸의 통증 때문에 마음이 나약해졌던 것일까? 강력한 주사와 진통제로 통증이 약해지면서 긍정의 기운이 솟구쳤다.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고 도서관에서 책도 잔뜩 빌려왔다.
글쓰기, 상담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들도 우후죽순 떠올랐다. 중장비, 특히 포클레인을 운전해보고 싶고, 전기기술사나 상하수도기술사, 타일 붙이는 것도 배우고 싶다. 나는 집에서 맥가이버(옛날 미국 드라마로 무엇이든 잘 고치고 만드는 캐릭터)로 정평이 나있는데 막힌 변기나 하수구도 스스로 뚫고 전등은 물론 수전이나 샤워기도 스스로 수리, 교환하고 문고리도 고친다. 그 밖에 고장 난 시계나 의자, 아들의 장난감도 척척 고친다. 무엇이든 버리기 전에 우선은 내가 다 뜯어서 그 작동원리를 속속들이 알아야 속이 시원하다. 이번 기회에 교육을 제대로 받아보면 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기술사까지는 아니어도 기본 기술을 배운다면 엄청 뿌듯하고 나중에 혹시 집이라도 짓는다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한편 고작 몇 편의 글을 완료하면서 삐그덕 거리는 허리로 과연 그 일들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된다. 빵을 좋아하니 베이커리도 배우고 싶고 허접한 위장이라 하루 한 잔도 일주일에 두어 번 아껴마셔야 하는 커피도 배우고 싶다.
고등학교 때는 오직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만 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작가로는 생계를 책임지기 어렵다는 것을 시작도 전에 알았다. 그래서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안정적인 일이 있어야 했다. 대학교 때는 졸업 후 어떤 직업을 가질지 몰라 무작정 영어 공부를 하고 학원비 때문에 알바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상담을 시작했다.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고 사회적 체면도 중요했다. 여자가 하면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일, 사람들이 무시하리라 예상되는 일은 모두 제외했다.
모든 것을 리셋하고 다시 진로 교육을 받고 싶다. 나에게는 상담이라는 보루가 있고, 작가라는 이정표가 있다. 뒤로 숨을 곳도 앞으로 나아갈 곳도 있으니 그 과정에서 무엇이 되든 갑자기 떠나는 여행처럼 신날 것 같다.
나에게는 210일간 구직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 지금 센터에서 일한 기간만 카운트되는 줄 알았는데 이전에 국가 상담기관에서 일했던 기간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고용보험이 적용된 일자리에서 근무한 기간과 비례하여 구간별 일수가 정해져 있다. 나는 5~10년 미만의 경우로 210일간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취업 활동을 할 수 있다. 아마도 그 기간을 다 쓰지는 않을 것 같지만, 실업수당을 받고 다시 진로교육을 받을 수 있다니 설렌다! 하지만 실업수당은 이제까지 내 소득의 60~70% 정도도 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나의 소득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내일 배움 카드로 진로 교육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30% 정도는 내가 부담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는데 친구가 말했다. 자신은 과거 실업수당을 받아 작가교육원에 들어갔단다. 공돈 같아서 하고 싶은 일에 다 썼다고. 아! 소득이 줄어든 게 아니라 공돈이 생긴 거라고 생각할까?! 위대한 정신승리다!
아직도 그만두지도 않았는데, 벌써 새로운 삶이 기대되다니!
실직은 새로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