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멘붕이다. 이제 낯선 일도 아닌데, 어찌하여 아들의 방학마다 고군분투하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방학쇼크에 빠져 도대체 무엇에 감사해야할지, 차라리 각본을 만들어 감사를 조작해야할 정도다. 세상에서 제일 보고 싶지 않은 글이 자식얘기인데 아들의 긴긴 방학으로 내 삶의 80%를 아들이 점령하면서 입을 열면 넋두리가 삐져나온다. 젠장! 방학이 되면 그나마 어렵게 유지하던 아들과의 애정곡선이 탄핵정국의 한국 주가처럼 요동친다.
관찰해 보니 이렇다.
남편과의 애정, 남편의 수입은 나의 행복과는 정비례하지만 개인적 성장과는 반비례한다. 나는 남편과 노는 게 너무 좋아서 남들이 직업적으로 발전하는 30~40대에 성취는 최소로 유지만 하고 오직 사랑만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시간을 늘렸겠지만, 남편이 우리 가족이 필요로 하는 수익의 안정선을 채워줬기 때문에 내가 더 벌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줄었다. 그러니 자연히 일에서의 성취 필요성이 적어졌고 성장에 대한 열정도 줄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사랑이나 하다 죽자는 심정으로 필수 육아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그에게 썼다.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나는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그의 옆에 붙어 지냈다. 그와의 애정은 투자 포트폴리오로 보자면 예금과 국채 같은 안정 자산이다. 그와의 애정이 바위처럼 든든히 받치고 있기에 변동성이 크고 리스크가 높은 투자도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비중이 너무 커서 다른 곳에 투자할 자금은 크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아들이라는 변수가 내 삶에서 폭죽처럼 터져도 나의 행복지수(0~10)는 5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자식과의 애정, 아들의 학업시간 역시 나의 성장과 반비례한다. 아들과의 애정곡선이 우상향일 때,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비대해지고 개인의 일과 꿈에 대한 열정은 쪼그라든다. 반면 아들과의 관계가 요원해지고 아들에 대한 학업적 기대가 좌초되면 다시 개인의 성장열정은 높아진다. 그리고 청소년 아들의 학업성실도(성취도 아님!)는 애정과 (진심!)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필히!) 상관관계에 있어 아들이 성실히 공부하면 애정이 더 올라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안 한다고 반드시 낮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안 하는 것과 세트로 있는 여타의 일탈 행동이 애정곡선을 우하향 방향으로 트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번 방학이 시작되면서 아들이 학원이 아닌 집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여 나는 주 3회 그의 영어를 봐주게 되었다. 딱 2주간 (웬일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들을 보며 엄마라는 본캐가 모든 부캐를 물리치기에 이르렀다. 집중 없이 하루 반나절을 지지부진하게 공부하는 아들의 과외선생님이 되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밥하고 공부를 도와주고 또 밥하고 점검하는 나의 성장과는 관계없는 시간을 보냈다. 글도 거의 쓰지 않고 영화도 보지 못하고 오직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석봉의 어머니처럼 밥을 하고 간간히 책을 봤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들이 다시 공부를 안 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행복과 스트레스는 난세의 주가처럼 요동쳤다. 아들이 온갖 거짓말로 공부 계획을 초토화시키면서 그와의 애정곡선은 작금의 삼성전자 주가처럼 우하향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과의 애정곡선이 추락하고 있을 때, 나의 개인적 성장곡선은 트럼프 2기의 테슬라 주가처럼 드라마틱하게 반등했다! 마음속에서 "다시 글을 쓰자!" 는 열정이 용암처럼 부글거렸다.
이 얼마나 한심한가! 안다. (나도 안다고~~~!!!) 개탄스럽게도 나의 행복과 성장은 아들과 남편의 애정이라는 독립변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종속변수다. 아마도 현재의 나는 성장보다 행복이 중요하고, 더 안정적으로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은 통제할 수 없는 아들과 남편이라는 변수를 더 통제하려 했다. 방학동안 더 불행한 이유는 통제할 수 없는 아들이라는 변수가 비대해지고 동시에 그를 통제하고자 하는 나의 불가능한 기대가 더 높아져서다. 내 행복을 유지 하기 위해서는 문제로 부터 도망가거나 문제와 싸워야 한다. 전자는 아들을 학원으로 유도하거나 내가 밖으로 나가 환경을 바꾸는 방법도 있겠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후자인 내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통제 가능한 변수로 바꾸는 것 또는 애정을 조건부 애정이 아니라 무조건적 애정으로 바꿔 그 변동을 줄여야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설령 부모자식 간에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그것이 부모든 또는 자식이든 염치없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학대하는 부모와 연을 끊는 것이 건강하듯, 부모도 빨대 꽂는 자식이 미울 수 있다.
그러니 정리해 보자면 현재, 집 나간 정신끈을 부여잡고 나의 행복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나의 행복을 독립변수로 놓기
2. 타인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님을 다시 인정하고 명심하기
3. 행복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애정이 아닌 통제 가능한 나의 변수(예, 나의 직업적 성취나 글쓰기 성실도)로 대체하기
4. 행복에 영향을 주는 변수의 종류를 가능한 다양하게 늘려서 비대해진 애정변수의 몸통을 줄이기
5. 내 행복이 종속변수임을 인정하고 가능한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예, 아들이 집에 있으면 밖으로 나가기, 내가 더 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기)
아들의 방학이란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꽤나 거창하다. ㅋㅋㅋ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내 불행의 원천이 밖이 아닌 안에서 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화요일의 감사
- 아들이 공부를 안 하면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