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를 받기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다. 다음 달이면 실업급여를 받는 삶도 끝이 난다. 일반적인 직장인은 아니었던 터라 수급비가 보통의 1/3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받는 지원이 꿀같이 달았다. 일을 안 하면 심심할까 봐 걱정했지만 웬걸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6개월이 아니라 6년도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쉬는 동안 조금씩 소설을 쓰고 공모전에 출품하며 나름의 소일을 했다. 양심상 전업작가처럼 열심히 썼다고 거짓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이제 실업급여 수급 종료를 앞두고 의무 구직활동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취업시장에 내몰렸다. 월 2회 해야 하는 구직활동이 주 1회로 늘어난 것이다. 이러다가는 원튼 원치 않튼 취업이 되게 생긴 것이다. 상담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지만, 구인란을 얼쩡이다 보면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낮은 임금과 그나마 내 자리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은 날 슬프게 한다. 내가 소설을 쓰고 남편과 놀러다니는 동안 다른 동료들은 멀리 달려간 것 같아 쫄리는 마음도 든다. 유학을 때려치고 교수가 될 가능성을 포기했던 선택을 돌이켜 생각하는 지경에 다다르면 컴퓨터를 닫는 것이 낫다.
일하고 싶은 마음과 글만 쓰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내가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 반년은 글만 써도 되는 환경이었음에도 글만 쓰지는 못했다. 더 치열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일은 소설가로서의 성공에 대한 기대를 피하는 구실이 되고, 소설에 대한 꿈은 일을 피하는 방패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 어디에도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경계에 서있다. 깍두기처럼.
그리고 오늘 7개월 만에 남편과 함께 출근을 했다. 정확히 출근은 아니고 면접이 잡혀 남편의 출근길에 함께 나왔다. 오랜만에 여행이 아니라 일 때문에 남편 차를 타고 나오니 기분이 새로웠다.
남편은 올해 2월부터 주 1회 야간알바를 했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대형동물병원에서 일해 보고 싶다며 좀처럼 보기 힘든 일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야간 수의사의 경우 일당이 나의 한 달 수급비와 맞먹었다. 내 수급비가 워낙 낮은 이유도 있고 동물병원의 야간 일당이 꽤 높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밤새 스무 마리 안팎의 동물들을 챙기느라 남편은 퇴근 후에는 녹초가 되었고 토요일 늦은 오후까지 잠을 자야 했다. 남편을 위해서 나와 아들은 휴전 협정을 맺고 쥐 죽은 듯 있어야 했다. 물론 언제나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가장의 숙면을 위해 꽤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5개월 만에 남편의 건강에 적신호가 울렸다. 이명이 들린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보니 메니에르병이 의심된다고 했다. 수면부족. 가장 유력한 원인이었다. 남편은 고3 때도 8시간을 꼭꼭 챙겨 잔 사람이고 지금도 최소 8~10시간씩 자는 사람이다. 야간알바를 하는 날이면 다음날 부족한 잠을 채워 잤지만 그의 바이오리듬을 망친 것이 분명했다.
6개월까지 하고 싶다는 것을 당장에 관두라고 조언했더니 득달같이 퇴사를 알렸다고 한다. 원래 영화에서 모든 주인공들이 이번 판 만 끝나면 떠난다고 하지만, 다들 그 판에서 죽는다. 목표까지 가려다 골로 가는 거다. 내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얻은 교훈이다. 몸의 신호가 오면 무조건 멈춘다.
내가 면접을 본다니까 남편이 좋아했다. 자신이 알바를 그만둔 쇼츠를 마누라 네가 메우라는 암시다. 좋아하는 남편을 보며 내가 너무 무심했나 미안했다. 나의 황금알을 낳는 메추리가 가족 부양을 위해 그간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애를 쓰는데 반려자로서 너무 방관했던 것 같았다.
"오케이! 내가 오빠의 야간알바 비용을 메꿔주겠어!"
라고 큰소리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센터 원장님이 구직자에게 요새 경기가 얼마나 안 좋은지 구구절절 늘어놓으신다. 센터의 수익이 경기가 좋을 때 보다 반 이상 뚝 떨어졌다며 내가 고용된다면 이전에 받던 페이만큼도 다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상담 쪽은 대부분 자유용역이기 때문에 센터에서 상담사를 많이 뽑는다고 경영자 입장에서 비용이 더 들지 않는다. 그러니, 경영이 안정적이지 않은 센터에 들어가면 한 달 수익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어든다. 어떤 날은 기껏 출근해서 1~2회기의 상담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5~7 건의 상담이 있기도 하다. 물론 전업으로 취직을 하거나 국가직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나, 내가 얼만큼 경력이 있든 9급 호봉으로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상담으로 주전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는 일은 불가능은 아니지만 가난하다.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원장실을 나왔다. 아... 가정경제의 쇼츠를 메워야 하는데. 걱정 말라고 큰소리 빵 쳤는데! 남편에게 카톡으로 그의 현재 경제적인 스트레스 레벨을 물었다.
ㅋㅋㅋ 다행하게도 남편의 경제적인 스트레스가 3이란다. 6 이상은 되어야 깍두기 출격인데 말이다.
4월 청소년소설 공모전에 출품한 소설이 뽑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6월에 출품한 교보스토리대상에서 상을 탈 수 있으면 진짜! 너무! 매우! 신날 것 같다. 계속 써도 되는 자격에 덧붙여 좋아하는 일로 수익이 창출되는 기쁨! 돈이 다가 아니라고 아무리 정신승리 해봤자 계좌에 찍힌 금액은 사회적 인정의 크기를 결정한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노예인가 보다. 돈이 안 들어오니 당당함이 자꾸 쪼그라든다. 예술가는 무릇 뻔뻔해야 하거늘...
글을 쓰는 동안, 면접을 본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백수를 청산하고 깍두기가 출격할 때인가 보다.
튀어올라라 깍두기!
나는 내 삶에서도 가정 경제에 있어서도 깍두기인 것 같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해있지 않은 존재. 그래서 어부지리로 이득을 취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직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지금은 깍두기인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누가 알겠는가. 어느 순간 대기석의 깍두기가 구원투수가 될런지.
화요일의 감사
-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노동의 현장에 투입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 일주일의 반은 소설가로서의 삶에 집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깍두기라도 되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