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와 이동이 있는 글 F≠0
F=ma
물체의 질량에 그 물체의 가속도를 곱하면 물체에 작용시킨 힘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2법칙이다.
가속도가 없는 물체는 아무리 질량이 무거워도 힘의 크기가 0이다.
나는 글을 쓰는데 한 번도 수상을 한 적이 없다. 가속도를 수상, 입금이라고 본다면 나는 글을 썼든 아니든 얼마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든 줄곧 0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내 시간이 확실히 많이 생겼다. 아이가 학교와 학원에 갔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시간을 보내도 가능한 시기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업무시간도 늘렸지만 습작시간도 전폭적으로 늘렸다. 소설 쓰기 모임을 만들어 참여하기도 하고 공모전 출품도 다양하게 했다. 꽤 많은 단편과 3편의 장편을 썼다. 1년에 겨우 단편 1~2편을 써서 신춘문예에 내던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1~2편 써서 떨어질 때는 붙으려고 하는 게 염치없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편했는데 한 3년 열심히 했는데 다 떨어지니 좌절이 컸다. 하든 안 하든 계속 0인 것 같았다.
새해가 되면서 또 파이팅이 넘쳤는데 막상 공모전에 내려고 하니 기분이 울적했다. 고통은 아는 고통이 제일 무섭다고 거절당하는 고통이 뭔지 알기 때문에 또 떨어질까 봐 손이 오그라든다. 그런 마음 따위 관심 없는 아들이 엄마 글 쓰니까 조용히 해달라니까 취미생활하면서 자기한테 피해 주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괴물딱지. 분명 매너즈 메이크 맨(Manners Maketh Man.)이라고 콜린 퍼스처럼 가르쳤는데 입력과 출력에 오류가 났나? 아니면 영어숙제 안 한다고 핸드폰을 뺏은 것에 대한 우회적 공격인가? 아무래도 과거에 말 안 듣는 아들에게 비아냥 거린 벌인 것 같다. 여하튼!
너 따위가 내 의지를 꺾을 줄 아냐?
오히려 투지가 불탔다. 지놈이 뭔데 엄마가 소설로 프로가 되겠다는데 취미라고 비아냥거려! 허리디스크에 노안까지 온 허접한 몸뚱이로 책상 앞에 앉아 퇴화하는 뇌를 부여잡고 애쓰는데 말이다. 한 번도, 그게 누구라도 나를 찍어 누르려는 자들의 힘에 눌려 본 적이 없단 말씀. '아들 내 남편 오면 다 이를 거야. 아빠는 언제나 엄마를 1등 사랑한다고 했거든! 두고 봐!' 아들이 항의를 하건 말건 2025년 공모전 스케줄을 서재 문 앞에 크게 써서 붙여놨다. (넌 상금 타면 국물도 없어! 멧퇘지놈!)
문화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일명 대스공의 작년 우승자들의 소감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신인은 없고 기존 이력이 화려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깔깔 거리며 본 <스터디 그룹> (티빙 오리지널, 2025)의 작가도 작년에 대스공에 입상했다. 아. 관둘까? 문 앞에 붙인 일정 뗄까?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9명의 수상자 인터뷰가 짧게 편집되어 나왔는데, '수상의 의미'에서 대부분 공통적으로 얘기했다.
글을 계속 써도 된다는 허락 같았다.
글을 써도 된다는 자격증을 받은 것 같았다.
해도 된다.
내 글이 괜찮다는 인정을 받은 것 같다.
다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이제 출발했지만 시작해도 된다는 응원은 됐고 '계속 달려도 된다, 네 글은 괜찮다.'는 객관적인 인정을 받고 싶었다. 저분들은 다 어떻게 긴 시간을 자기 회의와 절망, 외로움 속에 버텼을까?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허락과 인정, 자격증을 받았으니 부럽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매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계속 써도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니 위안이 되기도 했다. '아! 이건 모두의 고통이구나. 저 멀리 뒤에 있는 나만 힘든 일이 아니구나. 내가 글을 쓰는 한 계속 시험받게 되는 일이구나! 그럼 뭐 어쩔, 그냥 쓰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슬퍼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도 좀 슬펐다.
저녁에 아들을 위한 소고기패티를 만들었는데 프라이팬에 구우니 뭉쳐지지 않고 다 깨졌다. 되는 일이 없다.
여전히 슬퍼서 설거지를 미뤄두고 이 글을 쓴다.
올 4월에 처음으로 청소년장편소설을 써서 청소년소설공모전에 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어제는 교보문고스토리대상 공모전에 지난해 쓴 중편과 올해 쓴 단편을 수정해서 출품했다. 마지막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오랜만에 10시간씩 책상에 앉아 집중해서 글을 다듬었다. 다시 읽을 때마다 고치는 통에 이제는 새로 읽기가 무섭다. 그래도 공모전에 낼 때마다 기획의도를 쓰면서 나는 정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글을 쓸 것인지를 고민해 본다.
나는 힘이 있는 글을 쓸 것이다.
내 글의 무게가 누군가의 삶에 속도를 가지고 움직이게 만드는 힘.
F≠0 이 아닌 글.
그것이 내가 이야기를 통해 얻는 힘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상과 입금도 진심으로 바라본다! ^^
내일부터 다시 도전!
화요일의 감사
-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갖추어져 있음에 감사합니다.
- 아직 새로운 아이디어가 쓰고 싶은 글이 계속 생기는 것에 감사합니다.
-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나에게 즐거움이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