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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애로 뭉친 소설동지들

by Lali Whale

글을 쓸 때 동지는 육아할 때 동지랑 비슷하다.


내 글이야 나한테나 재밌지 다른 사람은 관심이 없다. 내 아이가 블랙핑크의 제니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렇게 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있겠는가. 내 아이는 내 자식이기에 머리에 난 뾰루지 하나까지 관심이 가고 그 얘기를 하고 싶지 듣는 사람은 노관심이다. 내 글도 그렇다. 내가 김은숙, 임상춘 작가도 아닌데 누가 내 글을 기다리고 내 소설을 보려고 돈을 쓴단 말인가. 나한테나 재밌고 의미 있고 소중하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글이라는 그림이다.


글을 쓸 때 동지는 대부분 관심 없어하는 내 아이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동지다.


날 때부터 같이 보고, 키우는 과정을 공유하고, 잘 안 풀리고 속 썩일 때는 하소연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만 하면 안 된다. 관계가 그렇다.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한다.

육아 고민을 애도 없는 친구한테 주야장천 하는 것은 민폐다. 눈치 없고 이기적인 일이다. 관심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애가~" 하는 말은 "오늘 날씨는~" 하는 말처럼 인사처럼 하고 끝내야 한다.

하지만 같이 애를 기르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주고받고 가능하다. "괴물딱지 중딩 놈이~", "말도 마. 우리 고딩은~" 서너 시간을 물고 뜯고 씹어도 모자라다. 나이 대도 비슷해야 한다. 갓난 아기 기르는 엄마랑 중딩 엄마는 대화가 안 된다. 고민이 너무 다르다.

글이 그렇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글도 안 쓰는 사람에게 만날 때마다 내 소설 속의 인물들이나 그 상황, 아이디어를 떠들면 안 된다. 떠든대도 재미도 없다. 떠드는 것도 같이 재밌어야 맛이 나지 혼자 떠들면 현타만 온다.


글 중에서 같이 키우기로는 소설이 제일 쫄깃하다.

소설을 길게 쓰면 각 캐릭터에 대해 애정이 생기고 그 스토리가 내 삶 속으로 비중 있게 들어온다. 내 일상에 다른 삶이 추가되는 거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내가 대작가여서 편집자가 있고 보조작가가 있어서 글에 대해 같이 얘기할 수 있지가 않다. 물론 작가마다 자기 스타일이 있어서 다 쓸 때까지 두문불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하면서 키워가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후자다. 물론, 내 성격상 말을 한다고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한 대로 이야기는 뻗는다. 근데 '얘=내 글'에 대해 자꾸 얘기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 미지의 노관심 세계를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소설을 같이 쓰면 엄청 의지가 된다. 각자의 소설을 쓰지만, 그 소설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다. 공평하고 관심 있게. 내 애도 내가 키우지만 신생아 때는 조리원 동지가 있고 유치원 가면 놀이터의 독수리오형제맘들이 있고 초딩에 가면 초1엄마 모임이 있다. 각 시기를 공유하는 전우애로 뭉친 육아 동지들이다. 설령 그 시기를 지나면 이별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시기를 함께 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환호도 입금도 없는 글쓰기라는 마라톤을 달리는 나에게 동지는 친구고 전우고 페이스메이커다.


브런치를 통해 만난 글쓰기 동지와 지난 두 달간 김훈 작가가 했다는 필일오(必日五)를 실천해 보고자 의기투합했었다. 매일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을 쓰는 연습인데, 근로기준에 맞게 주말은 빼고 주중 5일만 했다.^^ 2달간 3편의 시놉시스를 새로 썼고, 과학소재의 단편소설공모전에 낼 소설을 포함 두편의 단편을 새로 완성하고 매주 초단편 소설도 한 편씩 썼다. 작년 부터 준비한 교보스토리대전에 낼 글들도 수정해서 출품했다. 글쓰기 동지가 있었던 덕에 외롭지 않게 게으르지 않게 꾸준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동지와 굿바이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새로 만난 소설동지가 떠나는 것이 왜 아쉽지 않겠는가.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반드시 싫어서 끊어지고 좋아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우연히 때가 맞아 잠시 같이 하고 그러다 또 흘러가는 것이 인연이다. 다행히 함께 하는 동안 얼굴 붉히지 않고 서로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다, 우연한 때 다시 만나면 반갑고 축복을 빌어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동지와의 필일오에 우리 동네 영어학원분석리스트를 올렸다는 것이다. 그러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니고 방학이 있는 7월이 되기 전에 아들을 필히 어딘가 보내야 한다는 절실함에 어제 종일 학원을 알아봤다. 그리고 아침에는 마치 철천지원수처럼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고 멘탈이 바사삭 부서졌다. 이 질긴 인연은 싫어도 떨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떨어지면 또 못살겠고 나를 괴롭고 비참하게 한다. 아들은 나와 무슨 인연이길래 나는 그의 삶에 수초가 되어 얽혀있을까. 아들도 가족도, 메어있는 인연이 아니라 흘러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잘 안된다.


다시 소설을 써야겠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돌부리가 되고 수초가 되지 않게 내 삶을 살아야겠다.


화요일의 감사

- 부족한 나의 소설 동지가 되어준 훌륭한 '자연'님께 감사합니다.

- 여전히 함께 하는 2014년 소설동지들과 다락방작가모임 동지들에게도 감사합니다.

- 아들과의 전쟁에 매번 같이 지는 전우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 타이틀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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