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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비트코인 있는 여자!

by Lali Whale

나는 내가 우울해지는 것이 싫다. 인생은 짧고 사랑하며 살 시간도 부족한데 물을 흠뻑 머금은 스펀지 마냥 바닥에 축 늘어져 있으면 너무 아깝다. 그런 나를 바닥에서 떼어내려면 끊임없이 부채질을 해야 한다. 물기를 말리고 몸을 가볍게 해서 솜털처럼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부채질로 살아나려면 너무 많이 우울하면 안 된다. 우울감이 돌덩이처럼 묵직해져서 굳어 버리면 부채질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니 반드시 그렇게 되기 전에 있는 힘껏 나를 떠올려야 한다.


불과 2주 전까지 나는 어깨춤을 덩실거리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과학소재 단편소설공모전을 생각하며 시놉을 쓰고 일주일간 단편소설 하나를 후딱 완성했다. 남편이랑 가끔 가는 광교의 대형카페에서 맛커피를 마시며 소설을 쓰고 초저가 마트에 들러 신나게 장도 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다음에 판타지 오컬트 AI 하드고어 스릴러를 쓰겠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기분은 한순간에 별것 아닌 일 때문에 뚝 떨어진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우울할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기분이 한 번 떨어지면 어깨가 축 쳐진다. 생각해 보면 별일 이라 한들 내가 굳이 우울할 필요는 없는데 어떤 순간 불가해하게 기분이 안 좋아지면 난 물가를 나온 물고기처럼 멍하니 있는다.


만날 싸우는 아들과 또 싸운 게 그렇게 문제였을까?

만날 떨어지는 공모전에 또 떨어진 게 더 문제였을까?


컨디션이 좋을 때는, 각각의 활동과 그에 맞는 정체성은 각각의 공간에 잘 정리되어 있다. 글을 쓸 때는 글만 쓰고, 아들이랑 있을 때는 엄마만 하고, 상담을 할 때는 상담만 한다. 상담할 때 아들걱정을 하지 않고 글 쓸 때 상담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집을 나가면 집 걱정은 안 하고 상담실을 나오면 상담 걱정을 안 하고 떨어진 공모전은 과거에 두면 된다. 기분이 좋을 때는 그렇다.


하지만 기분이 나빠지면 내 안에 있던 방들의 잘 닫아놓았던 문이 열리고 그 안의 상념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상담실을 나와도 상담사였던 내가 집에 같이 오고, 여행을 가도 집에 있는 아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 어제의 실패는 오늘의 나를 붙잡고, 아무것도 못하게 훼방을 놓는다.


그게 딱 지난주였다. 한 주간 글도 안 쓰고, 신나지도 않고, 상담도 하기 싫었다. 이제 막 취직했는데 ㅠㅠ


하지만 나는 나를 그렇게 둘 수가 없다.


그래서 어재는 책을 듣고 읽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탄금>을 재밌게 봐서 밀리의 서재에서 동일 작가의 신작 <탁영>을 읽었다.


밤에는 원래 나 혼자 짜구 산책을 짧게 갔다 오는데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가 같이 갔다. 길게 한 바퀴를 돌고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폴라포를 사 먹었다.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책과 내 기분과 아들과 떨어진 공모전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았다. 남편이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을 새우처럼 뜨고 나를 째려봤지만 밤 데이트가 즐거웠다.


하지만 부족하다!


오늘은 종일 코인을 알아봤다. 빗썸과 업비트 중에 어떤 거래소를 이용할지 비교하고 전화도 몇 번이나 했다. 2018년도에 있었던 빗썸의 해킹사건 이후 피해자 보상은 몇 % 까지 이루어졌고 앞으로 혹시라도 그런 해킹이 발생할 경우 얼마까지 보전되는지 물었다. 상담사가 모른다고 알아보고 전화를 준다고 했다. (퇴근시간이 지났는데 전화는 아직 안 왔다.) 그냥 우리나라 점유율 1위 거래소인 업비트를 쓰면 되는데 빗썸에서 이벤트 현금을 5만 원 준다기에 솔깃하여 결국 빗썸 계좌를 열었다. 비트코인을 살지 알트코인이나 스테이블 코인을 살지, 스테이블 코인은 USDC를 살지 USDT를 살지 챗GPT와 긴긴 대화를 나눴다. 거래소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지갑을 이용하라는데 하드지갑과 소프트 지갑이 있다고 해서 각 종류별 장단점까지 알아봤다. 그런데 비트코인 한 개 가격이 무려 (오늘 기준) 1억 4천8백만 원을 호가하지 않던가! 허허허 어찌나 열심히 알아봤는지 글을 쓸 때 보다 더 허리가 아팠다.


코인은 너무 모르는 세계라 감히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고 보니 별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100만 원을 계좌에 넣었다. 한 달에 30만 원 싹만 매수해야지~ 나는 주식계의 5주의 마법사, 조막손새가슴스탁클럽의 창단멤버가 아니던가!


7시간이나 알아보고 결국(고작) 165,000원어치, 0.00111487 BTC를 매수했다.

(지갑까지 알아볼 일도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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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비트코인 있는 여자다!


사람들에게 나도 이제 코인 투자자라며 자랑을 했더니 밤에는 꼭 자라고 한결같이 얘기했다.

ㅎㅎ 165,000원 샀다구요~ㅋㅋㅋ

그중 65000원은 빗썸의 이벤트 참가로 받은 돈이다.

그 금액에 못 자면 그게 더 이상한 게 분명하다.


종일 코인생각에 빠져 기부니가 한껏 고양되었다.

오늘은 못쓸 것이라 예상했던 감사일기도 단숨에 썼으니 코인이 효자다.


역시 정신 뒤흔드는 데는 돈만 한 게 없다.

165,000원이 아니라 165,000,000원을 살 수 있었다면 기분이 지붕을 뚫었을텐데!



화요일의 감사

- 비트코인 수익률 현재 시간기준 0.32%! 마이너스 아니어서 감사합니다.

- 수년간 -70%를 고수하던 나의 카카오 주식이 -57%까지 힘내주어 감사합니다.

- CJ ENM에 시나리오는 못 팔아도 주주라도 되어 보려고 15주 샀는데 -45% 에서 -37.74% 로 상승세!

- 삼성, 현대차, 대한항공 너희들도 힘내! 항상 응원하고 있는 거 알지! 삼성은 좀 분발하자! 파이팅!

- 얼마 없어 더 소중한 엔비디아야~ 넌 그저 사랑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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