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도전기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딱히 대단한 퀄리티의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건강하고 활발했으나 육체파로 불릴 만큼 강철 체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내게 주신 것들은 책이나. 피아노처럼 건전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었으며, 그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러나 만화가 가진 특유의 다이내믹함은 어린 내 시선을 끌기에 압도적인 매력이 있었다.
만화는 그림과 그림 사이의 여백에서 발생하는 다음 장면에 대한 연상 작용을 통해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가령 소년과 소녀를 각각 하나의 컷으로 그려놓고 세 번째 컷에서 눈을 마주친 장면을 그려놓는다. 그러면 두 사람이 마주한 시선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된다. 그런 네 번째 컷을 배치할 때 어떤 표현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마지막 컷에서 갑자기 뭔가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 사건이 일어난다면 강렬한 재미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글로 말하는 소설과 다른 점일 것이다. 특정 장면을 아무리 정교하게 설명하더라도 구체적 상상은 독자에게 오롯이 달려 있는 것이 소설이다. 그에 비해 만화는 장면 자체를 시각화하기 때문에, 독자가 상상할 여지는 적어진다.
대신에 작가의 시각화 숙련도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느냐에 따라 연출한 세계를 독자가 납득하고 매력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소설가와 다르면서도 같은 의미에서 부담감이 있다.
나는 최근 모 포털에서 진행하는 웹툰공모전에 작업물을 출품했다. 현대판타지 장르물로서 내가 상상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각화하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스토리보드를 구상하고 펜터치를 하며 채색과 연출을 하는 과정 전부 홀로 진행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한 화의 분량을 어느 정도까지 설정해야 하며, 각 장면의 퀄리티는 어느 선에서 정리해야 하는지. 글꼴은 어떤 것으로 하는 게 좋을지와 대사의 수준까지. 생각해야 할 것이 참 많았다.
어떤 결과를 맞더라도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지만, 매주 작업물을 연재하는 모든 작가들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얼마 전 갑자기 타계한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이 떠오른다. 내 어린 시절에 큰 추억을 안겨 줬고, 대중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그 사람.
그분도 한 때는 공모전에 줄줄이 낙선했고, 심지어 편집자에게 원고를 몽땅 파쇄당하는 수모도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끝내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선사한 대작가가 되었다.
그분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불멸의 대열에 한 발짝 가까이 가고 싶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을 함께 적어 두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불멸에 가까워지는 가장 쉬운 한 가지 방법은,
기억할 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