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연히 디지털카메라를 선물 받았다.
손에 올려보니 생각보다 묵직했다.
가벼운 취미쯤으로 여기기엔 은근히 단단한 무게였다.
셔터를 눌렀을 때 들려온 '찰칵'소리는
작지만 또렷했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날 이후 책을 펼치고 강의를 들으며 사진을 배웠다.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익히는 일은
결국 빛을 읽는 일이었다.
빛이 머무는 자리와 스러지는 방향을 따라
몇 번이고 연습했다.
그때부터 순간 앞에서 자주 멈춰 서게 되었다.
빛이 기울어지는 속도,
사람의 웃음이 번지는 타이밍,
저녁 공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결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셔터를 누른다는 건
시간을 붙드는 일이 아니었다.
스쳐간 것에 조용히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일이었다.
스쳐갔지만 분명 빛으로 존재했던 순간.
사진은 사라짐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사라짐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한동안 그 무거운 카메라는 어디든 함께였다.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이탈리아에서도 그랬다.
자유여행이라 손에 들 것은 많았다.
휴대폰, 가이드북, 각종 티켓, 기념품이 담긴 가방들.
베니스의 바다에 선글라스를 빠뜨린 날도 있었다.
순간 손이 허전해졌지만,
다른 한 손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잃어버린 것은 있었고
끝내 놓지 않은 것이 남았다.
집 앞 공원을 걸을 때도,
친구와 마주 앉은 술자리에서도,
가족 여행의 아침 햇살 속에서도
카메라는 늘 곁에 있었다.
하루 종일 사진만 찍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
빛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던 시절.
골목의 그림자,
낯선 언어가 부딪히던 광장,
물빛이 저녁으로 기울던 시간.
프레임 안에는 풍경보다 마음이 더 많이 담겼다.
사진은 장면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보관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일이 늘었고 하루는 짧아졌다.
삶은 점점 효율을 요구했고
감탄은 속으로만 스쳤다.
어느새 카메라는 책장 한편으로 밀려났다.
먼지가 얇게 내려앉고
햇빛이 무심히 스치고
그 위로 몇 번의 봄과 겨울이 흘렀다.
어제 문득
손끝이 기억하는 묵직함이 떠올랐다.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꺼내 전원을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작고 어두운 액정 위로
내 얼굴만 희미하게 비쳤다.
고장이 아니라 침묵처럼 느껴졌다.
돌보지 않은 시간은
말없이 멈춘다.
수리를 할지,
중고장터에 내놓고 새 카메라를 장만할지
잠시 저울질하다가
결국 마음이 먼저 기울었다.
고쳐두기로 했다.
성능은 예전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
느리고, 무겁고,
자주 손이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긁힌 모서리와 닳은 스트랩은
한 시절의 체온을 알고 있다.
서툴고 진지했던 날들의 내가
아직 그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흐려지지만
손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닳은 자국은
그 시간이 진짜였다는 증거다.
다시 예전처럼 자주 쓰지 않더라도
곁에 두고 싶다.
그저,
한 시절의 무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