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절을 찾는 시간
연초의 시간은 늘 조금 묘하다.
1월은 해피 뉴이어라는 말로 시작하고,
2월은 설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리셋된다.
그리고 3월쯤 되면
사람들은 슬슬 고개를 든다.
아, 이제 진짜 시작해야 하는구나.
연초의 국룰 같은 흐름이다.
그래서 나는 3월을 좋아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기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근교의 큰 카페에 다녀왔다.
마당 한편에 라벤더가 심겨 있었다.
지금은 아직 초록뿐이었다.
조용한 줄기들이 햇빛을 받고 서 있었다.
보랏빛은 아직 멀리 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미 계절이 그 자리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꽃은 아직 없는데
어쩐지 약속은 먼저 도착해 있는 느낌.
보랏빛이라는 건 참 묘한 색이다.
늘 자기 계절을 정확히 알고 찾아온다.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늦지도 않는다.
그저
때가 되면 핀다.
라벤더 앞에 서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내 계절을 더듬고 있는 중이라는 것.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마음은 있는데
손에 잡히는 방향은 아직 또렷하지 않다.
붙들고 있는 고민들은
답이 있는 질문인지조차 모르겠다.
그 사이에서 시간은
또박또박 앞서 걸어간다.
조용한 얼굴로,
하지만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걸음으로.
어쩌면 삶에는
이런 구간이 꼭 있는지도 모른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향기도 아직 없지만
땅속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준비되고 있는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준비되는 계절.
라벤더도 어느 날 갑자기
보랏빛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빛을 조금씩 모으고
바람을 조금씩 배우고
자기 속도를 천천히 맞추다가
때가 되면
그저 피는 것.
그 생각을 하니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직 내 계절을 모른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가만히 서 있지만은 말자.
라벤더가 피는 날을 기다리는 대신
오늘 내가 먼저 한 발 움직여 보기로 한다.
답이 없으면
조금 더 걸어보는 쪽으로.
방향이 흐릿하면
몸을 먼저 보내보는 쪽으로.
시간이 이미 앞서 걷고 있다면
나는 그 뒤에서
조금 늦게라도 걸어보는 쪽으로.
라벤더가 피는 5월쯤에는
지금 붙들고 있는 고민의 방향도
조금쯤 달라져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한걸음 먼저 걸어보기로 한다.
내가 먼저
피어 보기로 한다.
계절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지만
움직이는 사람에게 먼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