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메모, 시간
“넌 그러면 글은 언제 써?”
나의 스케쥴을 듣던 친구가 궁금해하면서 물어봤다. 진심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나는 주 2회 수공예 공방에서 재봉과 퀼트, 자수를 배운다. 매주 4회 각각 다른 기도 모임에 참석한다. 매주 3회 이상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한다. 주일에는 교회도 간다. 거기다가 스케쥴이 비는 날이면 친구를 만났다. 정말 글은 언제 쓸까?
‘출퇴근하듯이 시간을 정해 놓고 글을 써야 한다’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백수도 인생에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된다.
잘 써보겠다고 필명을 바꾼 후에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장비빨인 나는 만년필에, 노트에, 블로그 개설과 인스타그램, 브런치 작가까지 그야말로 장비로 풀 세팅을 했다. 글쓰기 챌린지 하는 곳을 찾아서 1년간 거의 쉼 없이 챌린지를 했다.
이제는 진짜 글을 써야 한다. 손가락을 움직여서 모니터 화면에 세종대왕이 정성 들여 만든 한글을 찍어 넣어야 한다. 머릿속으로 백날 생각한다 해도 글은 써야 나오는 것이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신나게 내 생각을 휘갈겼다. 그야말로 내 머릿속에 있는 날 것을 그대로 끄집어내서 모니터에 쏟아부었다. 지금은 처음 쓴 글을 보면 지우고 싶다. 이 중구난방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퇴고할 때도 그냥 맞춤법만 살폈던 것 같다. 내 글이 최고인 것 같았다. 나의 글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졌다. 엄청난 착각 가운데 잠시 행복하게 살았다. 내 글이 다른 인기 글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왜 조회수나 좋아요가 별로 없지?’라고 생각했다. 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의 빈도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 <펠리칸 브리프>의 원작자인 존 그리샴은 하루 한쪽 소설 쓰기, 소설가 김훈은 ‘필일오’(하루 필히 원고지 5매는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 5시간 글쓰기를 한다고 했다. 시간이거나 양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초보인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를 따라 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 가랑이가 찢어질 수도 있다.
다만, 나만의 루틴을 세울 필요를 느낀다. 그래야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강원국 작가는 습관적, 반사적으로 시작 종소리에 맞춰 링에 오르듯이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글 쓰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글쓰기와 관련된 자신에게 맞는 쉬운 일을 먼저 찾으라고 했다. 나는 쉬운 일보다 재미있는 일에 더 자동 반응하는 사람이다. 거기다가 사람까지 좋아해서 누군가가 만나자고 하면 루틴은 일단 뒤로 하고 달려 나간다.
황유진 작가는 <어른의 글쓰기>에서 꾸준히 쓰는 방법의 하나로 '헤밍웨이 징검다리' 글쓰기를 추천했다. 헤밍웨이는 하루의 글쓰기 작업을 끝내기 전, 내일 어떤 내용을 쓸지를 정하고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녀는 글 쓰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마감을 만들고 루틴을 만들고 함께 쓸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 루틴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루틴 체크 표를 이용해 보았다. 아이들이 뭔가를 이루어 내면 칭찬 스티커를 붙이듯이 표기하는 방식이다. 나에게 있어 루틴 체크표는 ‘오늘도 이루지 못했구나’를 점검하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패스!!
글쓰기 전의 의식으로 오늘부터 클래식 음악을 틀기로 했다. 어제 만난 분이 클래식 라디오를 즐겨듣는다고 했다. ’한 택배기사가 베토벤의 ‘황제’를 신청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그 멋진 곡을 아는 사람이 힘든 택배 일을 하고 있다. 그 곡이 좀 길어서 그 날 못 틀어주었다. 신청한 사람에게 꼭 들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다음날 약속대로 틀어주더라.‘라고 했다. ‘황제’가 어떤 곡인지 몰랐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었다. 유튜브를 검색해 들어보니 꽤 집중이 잘되는 귀가 편안한 음악이었다. 유트브 알고리즘 덕분에 피아니스트 임윤찬까지 알게 되었다. 좋았어! 음악은 이걸로 하는 거야!
두 번째는 메모이다. 글을 쓸 때 메모를 먼저 해서 메시지를 뽑아내고, 구성을 생각한 다음 글을 쓰라고 배웠다. 여기저기 메모를 해 놓았더니, 기억도 나지 않고 찾을 수도 없었다. 글 쓰기 위해 기록한 메모가 컴퓨터 하드 안의 미아가 되어버린 셈이다.
다이소에서 파는 격자무늬 노트는 2년 전에 발견했다. 내 맘에 쏙 들었다. 격자무늬가 글씨 연습에 좋기도 하고 종이 질도 좋아서 쓰임새가 다양했다. 다이소에 갈 때마다 재고가 있으면 한 권씩 사 오곤 했다. 편하게 자주 이용하는 노트이다. 앞으로 글쓰기 메모는 나의 다이소 노트에만 하는 것으로 한다.
지금은 임윤찬 연주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있다. 한쪽에 켜 놓은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다이소 노트의 메모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임윤찬이 피아노를 연주하듯 내 손가락이 노트북 자판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좋겠다.
세 번째는 분량 또는 시간이다. 하루에 3줄 이상 글쓰기에 관해 글을 쓴다는 강원국 작가. 오후 1시부터 글을 읽고 어제 쓴 글을 퇴고하고, 하루에 원고지 8매 남짓 쓴다는 최진영작가. 일주일 기준으로 4~5일을 몰아 쓰고 2~3일은 쉰다는 황유진 작가. 다들 부지런한 사람이다.
나는 분량보다는 시간인 것 같다. 분량으로 글을 쓰는 단계까지 가기 위해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하루에 10분 이상 독서하기. 읽은 책으로 문장 노트 작성하기. 하루 30분 이상 뭐라도 쓰기. (사실 뭔가 쓰려고 하면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린다.)
어떤 작가도 글쓰기를 게을리해서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J.K. 롤링은 심심해서 쓰다가 해리포터가 나왔다고 하지 않았는가? 심심해도 쓰고 억지로라도 쓰고 아무튼 써야 글이 나오고, 필력이 는다. 운동하듯 꾸준히 해야 한다. 이 꾸준히 쓰기를 위해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본다. 나의 글쓰기가 작업이나 일이 아니라 재미가 되고 습관이 되고 무의식이 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