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머치 라이커 #1
명함에 '브랜드'라는 세 글자가 새겨지고 난 다음, 종종 받아본 질문이다. 어느 면접 자리에서도 이 질문을 받았었다. 경력직 브랜드 마케터를 채용하는 자리에 마땅히 예상했던 질문이었고 준비해온 답을 했다.
"나이키, 좋아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이키는 세일즈가 아닌 마케팅을 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활동보다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기존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고객의 마음은 물론 행동까지 변화시키는. 심지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브랜드라는 생각에 나이키를 좋아합니다. 같은 이유로 스타벅스, 우아한형제들, 프라이탁 그리고 여기(실제 생각도 조금은 그랬지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답이기도 했다)도 좋아합니다. 분위기를 띄우는데도, 면접도 성공적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꽤 높은 점수의 모범답안이긴 하지만, 그 당시 내가 정말로 나이키를, 스타벅스, 우아한형제들, 프라이탁을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많은 우연이 모인 결과였다.
01. 오롤리데이 [Oh, lolly day!]
회사 옆자리에 놓인 파우치에 웬 희한하게 생긴 캐릭터가 하나 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웃는 표정, 양 볼엔 주근깨 가득. 예쁘진 않지만 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알고보니 이름도 '못나니'였다. 그 옆엔 'oh, lolly day!'라는 어디서 본 것도 같고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한 문구가 쓰여있었다. (행복을 지향하는 'oh, lolly day!(오롤리데이)'는 단어만 들어도 자연히 허밍이 되는 올드팝 'oh, happy day!'에 창업자의 닉네임/영어이름인 'lolly'를 붙여 만든 브랜드 명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행을 가면 꼭 소품샵에 들러 가장 그 지역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노트와 펜을 산다. 펜은 항상 필통에 넣어다니고, 실용성보다는 귀여움에 더 초점을 맞춰 물건을 소비한다. 처음 오롤리데이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이런게 바로 취향이라는 거구나.' 라고 느꼈다. 상품군이 모두 내 취향이었다. 고민없이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펜, 몇 권씩 있어도 또 필요한 노트, 보기만해도 기분 좋아지는 폰케이스, 무난하면서도 컬러/캐릭터 포인트를 준 양말까지. 심지어 인스타그램에는 '오프라인 해피어샵 1호점, 상계동 오픈'이라는 코멘트까지 있었다.
그때의 나는 희진이와 결혼 3년차로, 오랜시간 희진이가 거주해오던 동네인 상계동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오픈일은 아직도 기억한다. 2019년 5월 15일. 희진이와 함께 가려고 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아마 희진이는 친구와 약속이 잡혔던 것 같다) 아무튼 혼자 갔다. 마감 직전 저녁 시간에 혼자서 귀엽디 귀여운 소품샵에 들어가 남들 몰래 사진도 찍고, 못나니가 귀엽게 그려진 노트와 펜도 사고, '우리 동네에도 이런 소품샵이 생기다니'라는 웅장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개월 후, 해피어샵에서 진행하는 '행복 습관 만들기?(여러 해가 지난 지금,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라는 오프라인 커뮤니티에도 참여했다. 그때 대표님이신 lolly(롤리)님을 처음 만났다. 첫 인상은 못나니와 닮았었다. 양 볼에 주근깨는 없지만, 24시간 웃고만 있을 것 같은 웃상의 밝은 이미지였다.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대화를 나눌 때는 그 이면에 차분하고 진정성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2023년 5월 19일. 그 사이 상계동 해피어샵은 문을 닫았고, 성수동과 판교동에 2호 3호 해피어샵이 생겨났다. '5/19~5/31, 성수동 팝업스토어 오픈'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가고 싶다는 마음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육아하고, 무엇보다 사람많은 곳에 가기를 싫어하다 못해 두려워하는 희진이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안이랑 같이 갈까?" 희진이의 용기와 함께 성수행이 결정됐다. 아쉽지만 이안이는 어머니께 부탁했다. 팝업스토어 입구에서 예상치 못하게 롤리님을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롤리님의 큐레이션으로 팝업스토어 쇼핑을 시작했다. 티 한 장에 32,000원, 키링 하나에 6,500원하는 곳에서 거의 20만 원 가까이를 썼다. 그렇게 신나게 쇼핑을 하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오픈시간부터 마감시간까지, 첫 날부터 마지막날까지, 팝업스토어 입구에서 일일이 고객을 맞이하고 직접 큐레이션해주는 일은.. 정말 미친 행동이었다. 그걸 하고 계셨다. 오롤리데이라는 브랜드는 이런 작은 행동들을 마일리지처럼 쌓고 또 쌓아, 진심을 다해 행복을 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회사 옆자리의 파우치, 우리 동네에 오픈한 오프라인 샵, 희진과 함께 참여한 커뮤니티, 그리고 팝업스토어에서 다시 만난 롤리님까지. 많은 우연들이 모이고 모인 결과, 나는 오롤리데이를 좋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