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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커 Oct 24. 2023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에 포트폴리오 만한 게 있을까?

NHN 사내 기획 스터디 #즐클럽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에 포트폴리오 만한 게 있을까? 처음 모이는 날에는 서로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서로 말하기로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오 라고 구구절절 소개하는 것보다 그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포트폴리오를 열었다. 이 포트폴리오는 디자인팀에 합격할 비주얼이 아니었다. (우리팀은 BX팀으로, 디자인실에 속해있고 나 빼고 모두가 디자이너다) 굵직굵직한 폰트가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들은 서로 목이 터져라 나좀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 하루 최소 여덟시간씩 꼬박 9년을 일한 기록을 단 27페이지에 다 담았는데. 언제 또 포트폴리오를 손 볼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땐 좀 더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대한 늦게 오는게 좋지 않을까?

나의 포트폴리오


아무튼, 포트폴리오는 있는 그대로 공유만 하면 되니까, 준비할 건 나의 하루 일과였다. 

7:00 기상 > 8:20 이안 등원 및 출근 > 10:00 업무 시작 > 19:00 퇴근 > 20:40 집 도착 > 21:40 이안 취침 > 24:00 저녁식사 및 집청소, 설거지 끝 > 2:00 취침

이 정도가 나의 하루 일과다. 여기엔 숨은 보물 같은 시간이 있는데, 바로 8:00-10:00과 19:00-20:40 출/퇴근하는 버스와 지하철 안의 시간. 그리고 24:00-2:00 잠들기 전의 자유시간. 이 두 타임이 나를 소개하기 가장 적합한 시간이지 않을까? 아빠가 아니라, 남편이 아니라, 브랜드 기획자가 아니라, 그냥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니까.


우선 출근시간은 쪼개서 쓴다. 나의 출근 루트는 다음과 같다.

1. 1139번 혹은 1140번 버스 > 중계역(7)
2. 중계역(7) > 논현역(7, 신분당)
3. 논현역(7, 신분당) > 판교역(신분당)
4. 판교역(신분당) > 380번 혹은 75번 버스

1번, 2번 구간은 [이동]이 주목적이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기도 하고, 특히 출근 시간대의 7호선은 앉는 건 고사하고 양옆과 뒤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때는 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무빙', '최악의 악', '도적 : 칼의 소리', '국민사형투표'.. 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거의 장르를 불문하지만 범죄 느와르 추적물을 특히 좋아하고, OTT는 웨이브,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을 번갈아본다. 인생 드라마는 '멜로가 체질'이다. 이병헌 감독이 극본과 연출에 참여했다. 장면 하나, 대사 한 마디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은 드라마다. 대단한 센스와 깊은 감동, 배우의 연기력이 한데 어우러진 최고의 드라마다. 우리는 태어나서 한 사람의 존재로서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의 삶을 마치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행위를 하는 내가 좋아하는 구간이다.

3번 구간은 다행히 80% 이상의 확률로 [착석]한다. 이때는 책을 꺼낸다. 나는 '일놀놀일'도, '더 퍼슨스 : 브랜드 디렉터'도, '지적자본론'도, '부부가 둘다 놀고있습니다'도 모두 이 시간에 읽었다. 아마도 내 하루 중 가장 좋은 거름을 주입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4번 구간은 [덕질] 타임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를 묻는다면 나는 지체없이 '모베러웍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모베러웍스를 함께 키워 나가는 한 사람의 모쨍이(모베러웍스 브랜드 팬덤)로서 모티비의 콘텐츠를 하나 골라 본다. 한 콘텐츠가 거의 15-20분짜리이기 때문에 판교역에서 내려서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딱 한 편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오면 1순위로 보고, 봤던 콘텐츠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주제가 맞거나, 궁금하다면 또 본다. 모티비를 보는 이유는, 내가 이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것도 있지만,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나도 내 일을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업무 시작 전 이보다 더 좋은 루틴이 있을까?


역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 역순인 퇴근길은 체력적으로 지친 경우가 많아서 그냥 마음 편히 드라마를 보면서 쭉~ 집까지 올 때도 많다.


집에 도착하면 2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1. 이안이가 잠들지 않은 경우 : 꽤 일찍 퇴근한 날이다. 이안이와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씻긴다. (대부분 내가 떠들고, 이안이는 블럭을 가지고 놀거나 엄마와 아빠 사이를 뛰어다닌다) 씻은 후 양치를 하고, 책을 읽다가 자러 들어간다. 둘이 들어갔다가 아무도 안나올 때도 있지만, 보통은 1시간 내외로 나와 집안의 일을 시작한다. 장난감 정리, 청소, 설거지.


2. 이안이가 잠든 경우 : 이안이의 하루는 아주 정직하게 흐르기 때문에, 이날은 단순히 퇴근이 늦은 거다. 그럼 바로 집안의 일을 시작한다. 장난감 정리, 청소, 설거지.


모두 끝내면 보통 11시 혹은 12시 정도가 된다. 이때부터가 또 오롯이 즐기는 자유시간이다. 각자의 방에서 잠든 이안이와 희진이를 두고 거실을 배회한다. 지금처럼 브런치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못다본 드라마, 예능,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특히 브런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잠시나마 지워준다. 그리고 가끔은 일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잠시나마 이안이를 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퇴근했기 때문이다. 개인 시간에 일을 하는 게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9년을 일하는 사람으로 지내본 결과, 나는 일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이건 브런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지워주는데, 그 이유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일을 많이 하는 것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다. 흰 백지 상태의 문서를 내 생각으로 차츰 채워나가는게, 다 채운 결과를 보는게 아주 기분이 좋다. 


아무튼, 이렇게 하루의 일과를 정리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발표하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기획자 세 사람의 즐클럽이 시작되었다.


(평일) 하루의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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