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머치 라이커 #2
무기력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흐린 날씨가 이어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져서 그런가, 아니면 요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일정이 밀리고 질질 끌려서 그런가.. 무기력하고 만사가 재미없고 그냥 다 뒷전으로 두고 이안이랑 놀고만 싶은 노잼시기가 찾아왔다.
무언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시작'이라는 단어는 '설렘', '기대'와 같은 단어들과 가까우니까. 그래서 당장 시작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적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일종의 버킷리스트처럼.
1. 새로 산 다이어리 쓰기
새로 산 다이어리가 올해 12월부터 있는 것 아닌가. 오늘이 10월 31일인데, 무려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12월 이후의 내가 다이어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쓰진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이어리에 적힌 11.30 위에 선을 찍 긋고, 10.31로 고쳐 썼다. 그리고 오늘의 감상을 한 자 한 자 눌러 담았다.
2. 예쁜 글씨 연습하기 / 악필 벗어나기
내가 쓴 글씨의 모양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콤플렉스와도 같았다. 소문난 악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쓴 암호화를 쉽게 해석할 수 없다. 명색이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진 놈이 글씨가 너무 못났다. 그래서 가끔은 내 글씨가 못나서 내가 쓴 카피까지 못나 보일 때가 있었다. 이번 기회에 글씨를 좀 교정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글씨 교정용 노트를 사려다가, 가지고 있는 예쁜 노트 하나를 골라 읽고 있는 책에서 기록해 남기고 싶은 구절을 적어 남기기로 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 행위를 필사라고 한다. 한 때의 나는 매일매일 필사를 했다. 하루 시 한 편씩, 총 100일 동안. 그때의 목적은 명석한 시인들이 쓴 시를 머리에 주입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지금 그 100편의 시 중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보면 실패한 셈인가? 아무튼 그 당시에도 무얼 꾸준히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이왕 글씨 연습하는 거, 의미있게 재미있게 도움이 되게 하자는 생각에 필사를 하기로 했다.
3. 꾸준히 기록하기
무언가 '시작'하기는 비교적 쉽다. '꾸준히' 하기가 어렵지. 그 어려운 걸 해보려고 하는데, 이 '기록하기'와 1번 2번과 다른 점은 사용하는 지면의 차이랄까? 이 기록은 브런치나 블로그에 남기기로 했다. 나 혼자서 쓰고 남기는 디이어리, 필사 노트도 좋지만 가끔은 "나 이거 하고 있어요!" 외치고 싶다. 관종력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4. 이안이랑 같이 자전거 타기
이건 잊고 지내던 내 로망이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며 더 넓은 세상 보여주기. '그냥 타면 되는 거 아니야? 당장 집 앞만 나서도 따릉이 보관소가 있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안이를 데리고 자전거를 탄다는 건 그리 쉬운 일 만은 아니다. 준비물이 꽤 많다. 자전거, 안전모, 보호장구, 아기 의자(마주 보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준비물인 희진이의 허락. 이게 제일 어렵다. 아마 불가능할 수도 있다.
5. 매일 만 오천보 걷기
운동을 싫어하는 나지만, 걷는 건 좋아한다. 현재 추세로 봤을 때, 출퇴근만 하면 만보를 채울 수 있다. 거기에 의식한 노력을 조금 보태면 만 오천보 걷는 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매일'이다.
6. 한 달에 한 번은 떠나기
'떠나기'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우선 계획하에 세 식구가 짐을 싸서 여행을 떠나는 걸 기준으로 두기로 했다. 굳이 잠을 자고 오진 않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아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떠나왔다!"를 느끼면 그걸로 성공하는 미션이다. 가장 쉬운 목표다. 이건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수정해도 괜찮을 듯싶다.
2024년이 오기 전에 이 여섯 가지의 미션을 최소 '시작'하는 걸 목표하기로 했다. 무려 두 달이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