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헤엄일지 #1
2024-01-06 <처음으로 아들 아빠가 부러웠다>
50분 동안 숨쉬기, 발차기, 팔 돌리기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운동을 하면서 힐링한다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희진의 말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 순간 의식도 안 하고 하던 숨쉬기가 장소만 바뀌었다고 이렇게 어려워진다는 걸 실감했다.
첫 강습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샤워실에서 샴푸칠을 하고 있었다. 옆 레일에서 수업을 받던 아빠와 아들이 함께 샤워실로 들어와 서로의 머리에 샴푸를 칠해주었다. 드라마에서나, 그것도 아주 예전 가족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이안이가 아닌 내가 태어난 이래) 아들이 쓸모가 있구나. 아들이 있으면 저런 건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24-01-13 <처음으로 물 위에서 누웠다>
수영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아진다.
발판 잡고 발차기 → 발판 잡고 발차면서 팔 돌리기(자유형) → 발판 놓고 자유형, 이 패턴으로 레일을 왕복했다. 한창 자유형을 하던 중, 다시 발판을 잡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의아해하고 있으니 누워서 발차기를 하라셨다. 처음으로 배영을 했다. 앞 차례 다른 분들의 자세를 따라 드러누워서 발을 찼다. 특별한 노하우 없이 일단 누웠는데도 가라앉지 않아서 신기했고, 발을 차니 앞으로 조금씩 이동해서 놀랐다.
선생님께는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받았다.
- 무릎을 많이 올리지 않고, 발등으로 찬다(단, 무릎이 키판엔 닿아야 함)
- 어깨를 열고
- 고개를 당긴다(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
2024-01-14 <물 위 멀티태스킹의 오류>
배영 발차기를 할 때는 무릎을 펴고 발등으로 발을 찬다는 사실을 이제 막 몸으로 깨달았다. 한참 발차기에 집중하다가 팔 돌리기를 배웠다. 180도, 머리 꼭대기까지는 손등으로 팔을 들어 올리고 내리면서는 손바닥을 바깥으로(45도 정도) 돌려 내리면서, 물 잡기(표현이 재밌다)를 한다. 아직은 팔 돌리기에 집중하면 발차기가 엉망이고, 발차기에 집중하면 좌로 기우뚱 우로 기우뚱 코로 물이 쏙 들어가는 수준이다.
2024-01-20 <선임님은 인정이 겁나 빨라요>
배영 발차기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 발등으로 차야 한다. 결과(발등으로 차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자세가 나오지 않았는데, 중요한 사실은 무릎을 굽히지 않는 것이었다. "발을 더 빨리 차세요."라는 말에는 발을 더 빨리 차는 것만 하면 된다. '왜 발을 더 빨리 차라는 거지?' → '내가 늦나?' → '빨리 앞으로 가라는 소리인가?'라는 건 다 내 생각일 뿐이다. 발을 빨리 차지 않아서, 엉덩이가 가라앉기 때문에 발을 좀 더 빨리 차라는 말을 했던 것이었다. 발을 더 빨리 차라면 그냥 발을 빨리 차면 된다. 질문이나 지시에 적합한 답을 먼저 하는게 우선이다. 내 생각은 그 다음에.
수영을 할 때는 오롯이 발차기, 팔 돌리기, 숨쉬기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평소에 생각해야 할 것들(일, 육아, 가정, 드라마 등)이 많은 나로서는 이만한 힐링이 없다는 걸 느낀다. 희진이가 운동 다녀올 때 매번 하던 말이다. 숨쉬기에 집중하다가 문득 일상의 어떤 대화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어떤 것의 방해도 없이 그 대화의 의미를 생각하고 나에게 질문하고 답하게 된다. 일상에서는 그렇게나 산만한데(성격도 산만하고, 앞서 말했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어본다), 수영할 때는 다른 불순물 없이 하나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할 뿐이다.
“선임님은 인정이 겁나 빨라요. 타격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나와 같이 일하는 전임님이 한 이야기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인정 빠르지만, 타격이 없진 않다. 오히려 큰 편이다. 내용을 곱씹어 보면, 인정이 빠르다고 표현한 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빠르게 수용하는데서 나온 이야기다. 내가 내 의견과 다른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교적 빠르게 수용하는 이유는, 사람은 모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편으로는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도 항상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다른 의견을 듣게 되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고, '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깨닫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나의 반응이 혹여나 내 의견에 욕심이 없어서, 좀 더 가자면 애정이 없어서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건 아닌데 말이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분들은 그런 오해를 하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2024-01-21 <배영은 자유형과 발차기가 같다>
배영을 배울 때, 선생님이 말했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발등으로 차야 한다고. 선생님의 말을 따라 해보니 전보다 힘도 덜 들고 앞으로도 잘 나갔다. 자유형을 할 때는 특별히 코멘트가 없으셨다. 하던 대로 무릎을 굽혀 찼다. 25m 레일을 다 가지도 못하고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운동이 모자란 탓이라 생각하고 죽어라 발을 찼는데, 첨벙첨벙하는 나를 멈춰 세운 선생님이 배영 때와 같이 무릎을 굽히지 않고 발등으로 차라고 하셨다. 아? 배영이랑 자유형이랑 발차기가 같냐니까 같다고 하셨다. 2주 만에 안 사실이다. 무릎을 굽히지 않으니 몸이 좌우로 많이 흔들렸다. 몸을 좌우로 흔들 일이 없어서 어색하던 차에 선생님께 여쭤보니 어색하지 않다고 하셨다. 자신에게 크게 느껴지는 움직임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변화를 줘도 된다. 평소 가던 길과 다른 길로 가봐도 되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볼 수도 있는 거다. 어차피 내 변화는 나만 알 테니까.
2024-01-27 <배영은 일자형 운동이다>
턱을 내리고 허리와 엉덩이를 들어 몸을 일자로 만든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발을 일자로 찬다. 팔을 일자로 들어 올렸다가 물을 잡아 내린다. 몸 전체가 일자가 되어야 완벽한 배영의 자세가 나온다.
2024-01-28 <수영은 불확신의 운동이다>
정작 물을 헤집고 다니는 나는, 내 자세가 맞는지 틀린 지는 알 수 없다. 배영을 할 때는 허리를 펴고 엉덩이를 들어 올려 몸을 일자로 만들며 턱을 당기고 무릎을 굽히지 않고 발차기를 하라고 하셨다. 팔은 일자로 바로 올렸다가 45도 틀어서 내리면서 물을 잡으라고 하셨다.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워서 머리를 굴려가며 하나 둘 배운 자세를 복기하면서 헤엄을 친다. 이게 맞는지, 어떤 모습/모양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처음으로 “이 자세 유지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아 이 자세구나.', '이게 맞는 자세구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발이 또 헛돌았다. 유지하라셨던 자세를 애써서 기억해야 한다. 그나마 맞는 자세, 그와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수영이라는 걸 시작해서 다행인 2024년 1월이었다. 한 편으로는 뭐든 시작하고 싶었던 1월이라 수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몸은 힘들지 않았다. 또 생각보다 내가 없이 주말 아침을 시작하는 이안이도, 그런 이안이를 온전히 혼자서 막아? 내는 희진이도 잘 버텨주었다. 나의 두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며 2월에도 주말엔 헤엄을 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