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붉은 벽화의 고향을 찾아서
왓 푸민의 화려한 벽화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이제는 그 전설이 시작된 뿌리를 찾아가야 한다.
난(Nan)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40km, 타이 르(Tai Lue, ไทลื้อ) 족의 삶이 오롯이 보존된 작은 마을에 왓 넝부아(Wat Nong Bua, วัดหนองบัว)가 있다.
이곳은 왓 푸민의 벽화를 그린 거장 ‘난 부아 판’의 고향이자, 그가 예술혼을 갈고 닦았던 모태와 같은 곳이다.
사원 정면에 새겨진 황금빛 꽃문양과 나비 장식은 화려하면서도 정갈하여 이방인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사자상 ‘씽(Singha, 씽하)’가 지키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왓 푸민에서 보았던 그 익숙하고도 깊은 붉은 빛의 세계가 다시 펼쳐진다.
2. 선명한 붉음과 바랜 시간의 대비
사원의 입구와 내부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굵은 티크나무 기둥들, 그리고 법당의 문은 확실히 강렬하고 선명한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세월을 비껴간 듯한 그 붉은 빛은 이곳이 성스러운 공간임을 선포하는 기운처럼 여전히 단단하고 선명하다.
반면, 그 붉은 기둥들 사이를 채운 벽화는 오랜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이한 듯 전체적으로 빛바랜 희끗희끗한 느낌이 강하다. 오랜 시간 햇빛과 바람이 닿으며 색이 흩어진 탓일 테다. 하지만 이 선명한 붉은 기둥과 바랜 무채색 벽화의 대비는 묘한 조화를 이룬다. 기둥이 공간의 현재를 지탱한다면, 희끗한 벽화는 150년 전의 과거를 가만히 소환한다. 형체는 흐릿해졌어도 그 속에 담긴 타이 르 족 여인들의 실루엣과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 삶의 에너지로 기둥 사이사이에서 반짝이고 있다.
3. 문 밖에서 만난 살아있는 시간
법당 안의 빛바랜 벽화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서면, 그림 속 풍경이 150년의 시간을 건너와 내 눈앞에 그대로 재현된다. 사원 앞 마당, 나무 그늘 아래에는 마을 어르신들로 구성된 소박한 악단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들이 연주하는 선율은 난의 강물처럼 잔잔하게 흐르며 이방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악단의 투박한 손마디가 빚어내는 그 소리에는 이 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정직한 삶이 담겨 있다.
그 옆에서는 타이 르 족 여인들이 베틀 앞에 앉아 하얀 실을 잣고 있다. 벽화 속에서 보았던 여인들의 모습 그대로다. 물레가 돌아가는 단조로운 소리와 여인들의 나직한 대화는, 왓 넝부아가 단순히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임을 말해준다.
과거와 현재가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있는 이곳에서,
시간은 더 이상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깊게 쌓여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