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의 숨겨진 보석,
난(น่าน)의 이야기

by 태국학연구소

태국 북부의 숨겨진 보석, 난(น่าน)의 이야기


난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왜 이곳이 치앙마이(เชียงใหม่)나 치앙라이(เชียงราย)만큼 유명하지 않은 거지?"

사실 난(น่าน)은 태국 북부에서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그만큼 깊은 역사와 독특한 매력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작은 왕국의 오래된 이야기와 평화로운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느긋한 삶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죠.


작은 왕국(อาณาจักร)의 긴 역사

난은 한때 독립적인 왕국(อาณาจักรน่าน)이었습니다. 14세기, 푸민 왕(พญาภูมินทร์)에 의해 공식 건국된 난 왕국은 무려 60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주변에는 강대한 이웃—란나 왕국(อาณาจักรล้านนา), 버마(พม่า), 그리고 후에 싸얌 왕국(อาณาจักรสยาม)—이 있었지만, 난은 현명하게 줄타기를 하며 살아남았습니다.

난 왕국의 건국 전설도 흥미롭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푸카’와 ‘푸민’이라는 두 형제가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왓푸민 사원(วัดภูมินทร์)의 이름도 바로 이 푸민에서 유래했죠.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후 54명의 왕(เจ้า)이 난을 통치하며 이 작은 왕국을 유지했습니다.


란나 문화권(ล้านนา) 속의 독특한 변주

난을 이해하려면 '란나(Lanna)'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란나는 '백만 개의 논밭'이라는 뜻으로,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태국 북부를 지배한 문화권이자 왕국입니다.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발달한 란나 문화는 태국 중부와는 다른 언어, 문자, 예술 양식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난은 단순히 란나 문화를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왓푸민 사원(วัดภูมินทร์)의 십자가 형태 건축과 네 개의 불상 배치는 난만의 창작물입니다. 이는 난이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발전시켰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작은 왕국이 독립적 정체성을 지켜왔음을 보여줍니다.


벽화가 들려주는 19세기 이야기

왓푸민의 벽화는 단순한 종교 예술이 아닙니다. 19세기 후반 난 사람들의 삶을 생생히 기록한 ‘타임캡슐’이죠. 이 벽화는 당시 복장, 머리 모양, 문신, 일상 도구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뿌만야만' 벽화는 두 남녀가 속삭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 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어떤 상황인지,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으니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벽화 곳곳에는 유럽인으로 보이는 인물과 증기선 같은 근대 문물도 등장합니다. 고립된 도시라 생각했던 난에도 서양 선교사와 상인들이 방문했다는 흔적이 남아 있어 사실상 난은 국제 교류의 장이기도 했음을 보여주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시간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난은 태국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산악 지형으로 둘러싸여 도로가 거의 없었고, 1970년대까지는 제대로 된 교통망이 없었습니다.

정치적 상황도 난을 고립시켰습니다. 20세기 중반, 공산 게릴라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태국 정부는 1980년대까지 난을 제한 구역으로 지정했으며 외국인의 방문은 특별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립이 난의 전통 문화와 건축물을 잘 보존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난 강(แม่น้ำน่าน)과 소금 무역

난 강은 난의 생명줄이었습니다. 고대부터 난 강을 따라 소금, 목재, 농산물이 오갔고, 이는 왕국 경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특히 소금 무역은 중요했습니다. 난은 '버끌르아(บ่อเกลือ)'라 불리는 암염 광산(고산소금)을 갖고 있었고, 여기서 생산된 소금은 란나 전역으로 공급되었습니다. 이곳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해발 800m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땅속에서 짠 소금물이 솟아오르는 곳입니다. 소금은 당시 화폐처럼 사용되었고, 난이 주변 강대국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습니다.

난 사람들은 우물을 지키는 수호신인 '짜오 루앙 버(เจ้าหลวงบ่อ)'를 극진히 모십니다. 매년 4월이면 모든 주민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엄격한 금기도 있는데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에는 소금 생산을 아예 중단합니다. 땔감이 젖는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땅의 신도 쉬어야 한다'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9개의 우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버 루앙(บ่อหลวง, 큰 우물)'이라 불리는 단 2개의 우물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어요. 이제 이 소금은 식재료를 넘어 피부에 좋은 소금 스크럽)이나 비누 같은 제품으로 재탄생해 여행자들에겐 좋은 기념품이 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민족의 모자이크

난에는 태국인(คนไทย)뿐 아니라 타이르, 라오, 카무, 몽 등 다양한 소수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각 민족은 고유의 언어, 의상,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난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해 왔습니다. 이런 다양성은 난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매년 10월 열리는 '보트 레이싱 축제(งานแข่งเรือ)'는 여러 민족이 함께 참여하는 대표적 행사로, 난 강에서 펼쳐지는 이 축제는 각 마을의 자긍심과 전통을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1931년, 왕국의 종말

난 왕국의 마지막 왕은 ‘짜오 쑤리야퐁 빠리야탐(เจ้าสุริยพงษ์ปริยธรรม)’이었습니다. 1931년, 그는 싸얌 왕국(현재의 태국, ประเทศไทย)에 정식 통합되는 데 동의했습니다. 당시 난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화 속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작은 왕국이었지만, 난 사람들은 이를 비극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큰 공동체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난 사람(คนน่าน)'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난

오늘날 난은 천천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2014년, 난 지역 여러 사원 벽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올랐지만, 급격한 관광 개발은 피하고 있습니다. 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속도로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100년 된 목조 가옥과 현대식 카페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아침이면 스님들이 탁발을 나옵니다. 저녁이면 야시장에서 난 카레, 돼지고기 소시지인 싸이우아, 쌀국수, 카오 쏘이 같은 북부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왓푸민 외에도 볼거리는 많습니다. 왓 프라탓 카우 너이(วัดพระธาตุเขาน้อย)에서는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더이 푸카 국립공원(อุทยานแห่งชาติดอยภูคา)에서는 북부 태국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난 국립박물관(พิพิธภัณฑสถานแห่งชาติน่าน)에서는 검은 상아로 만든 희귀 불상과 지역 역사 유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왕국이 남긴 큰 유산

난의 역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제국을 건설하거나 위대한 정복자를 배출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난은 작은 왕국이 큰 세상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켜온 조용한 이야기입니다.

왓푸민의 '뿌만 야만' 앞에 서면, 150여년 전 화가가 포착한 순간이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벽화 속 인물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 있었고, 이렇게 살았으며, 이것을 사랑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난은 천천히 걷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미래로 나아가는 법, 작지만 자부심을 지키는 법을 보여주죠. 그래서 난을 찾는 여행자들은 단순히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전 06화제6장: 에필로그 - 슬렁슬렁, 다시 삶의 리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