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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샤인 Apr 29. 2024

그것만이 너의 세상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서 한 친구가 본인의 힘을 과시하며 일종의 굴종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엔간해선 집에 있는 내내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는 아이다. 내려놓으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 아이와의 일을 이야기하며 휴대폰을 끄고 내게 다가와 앉았다.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동딸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저 모든 게 자기 위주로 돌아가던 세상에서 뜻대로 되지 않아 생긴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구나, 속상했겠네." 좋은 부모 매뉴얼에 나온 대로 공감하며 들어주기. 들어주기. 들어주기...... 그런데 듣다 보니 감정이 이입이 됐다. 아이의 억양에 따라 내 기분도 따라 오르고 내렸다. 종국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화가 났던 포인트는 정확했다. 내 아이가 그 아이의 협박에 무릎을 꿇고 비는 시늉을 하며 상황을 무마하니 돌아갔다는 것이다. 아이는 장난식으로 했다고 이야기했지만, 내 기분은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불현듯,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왜소하고 착하게 생기고 실제로 착했다. 내가 나를 지키는 법을 그래서 일찍이 터득했다. 나는 권력에 대항하지 않았고, 쥐 죽은 척하는 게 특기였다.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들의 눈엣가시가 되지 않는 것. 병풍 같은 존재. 어느 날 사라져도 모를. 굴욕의 학창 시절을 지나고 나니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되었다. 학창 시절,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할 사람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어린 객기를 부리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철이라는 것이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누가 날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는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판이 달라진 것이다. 치기와 객기가 권력이던 시절이 지나갔다. 드디어 내가 자신 있는 판으로 바뀐 것이다. 노력과 실력, 능력. 그런 것들이 권력이 되었다. 나는 그 안에서 조금씩 내 케파를 키웠고, 지금은 어디 가서 쫄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신감으로 충만한 내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쫄보일 것이다. 엄마에게 툴툴거리며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을까? 지금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나와는 달리 깡다구로 친구들을 밟고 올라섰던 남편의 객기를 닮기를 잠시 바랐다. 쫄지 마라. 아이야. 어떻게든 이겨라. 아냐. 맞대응으로 하기엔 상처가 크다. 또, 그러기엔 너의 어린 시간들이 훼손돼 버릴지도 몰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느 쪽이건.


그것만이 너의 세상이란다. 어떤 태풍이 몰아치건 곧게 나아가는 강인함이 함께 하기를. 엄마가 더욱 힘껏 너를 안을 테니 그 사랑을 가슴 가득 안고 어떤 일도 잘 헤쳐가는 용기와 지혜를 갖길,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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