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크라잉 넛, 투애니 원, 지 드래곤!

11화

by 이손끝

롯데리아에서 허무하게 끝난 사랑은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방황과 정적을 안겨주었다. 춤 대신 문장을 택하겠노라 다짐했던 건, 시선을 갈구하던 나의 몸부림이 이제는 펜 끝에서 조용히 흘러나오기를 바라서였다. 사람 많은 곳에서의 시끄러운 몸짓 대신, 한 단어 한 단어가 천천히 읽히는 침묵의 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도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나의 오랜 친구였던 보다 직관적이고 강렬했던 '음악'은 여전히 귓가를 맴돌며 나의 변화를 응원했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의 고비마다 음악은 늘 옆에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세상이 처음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텔레비전 앞에서 그들의 '문화대통령' 선언을 목격했다.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던 나는, 늘 맨 앞줄에 앉아 그들의 춤을 소심하게 따라 하곤 했다.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 그 시대를 춤추게 했던 에너지가 나의 심장에도 뜨겁게 박혔던 모양이다. ‘나도 저렇게 세상에 소리 지를 수 있다면......’ 하는 막연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땐 그랬다.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어린 날의 꿈.


청소년기, 삶의 공허함과 가난의 쓰라림이 나를 더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릴 땐, 크라잉 넛의 노래들이 나의 배경음악이 되었다. "말 달리자!" 그 시끄러운 가사와 펑크 록 사운드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답답함을 해소시켜 주었다. 롯데리아에서 췄던 그 춤도 어쩌면 나를 잡아먹으려던 분노와 좌절을, 그들의 음악처럼 밖으로 표출하려던 시도였을지 모른다.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 차라리 나를 더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그때의 나는, 한 편의 씁쓸한 코미디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에 목매지 않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나의 플레이리스트도 달라졌다. 투애니 원의 노래들은 어쩐지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되었다.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는 당당함 속에서 과거의 미숙했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용기를 얻었다.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빛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그들의 음악에서 들려왔다. 이제는 굳이 롯데리아에서 튀는 춤을 추지 않아도, 나만의 자리에서 나를 증명하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 희미하게나마 꿈틀거렸다.


그 욕망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춤 대신 펜을 들고, 거대한 무대 대신 작은 활자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일. 내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나의 음악적 취향은 지 드래곤에게로 향했다. 그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패션,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촌스럽게 요란하지 말 것, 더 진심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내 글쓰기도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롯데리아 그날의 나는, 단지 나를 봐달라고 외치는 어린아이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자유로움, 크라잉 넛의 격렬함, 투애니 원의 당당함, 그리고 지 드래곤의 독창성! 이 모든 음악의 흐름 속에서 나는 나만의 템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무대가 어디든, 어떤 형식의 노래든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목소리로 진정한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일이었다. 덜 상처받는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는, 나만의 조용한 무대를 만들어 가는 것. 이제 나는 그 무대 위에서 펜을 든 채, 나의 다음 멜로디를 쓰고 있다. 어쩌면 그 멜로디는, 롯데리아에서 끝났던 그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도입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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