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쉽게 주목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연애였다. 그러나

12화

by 이손끝

어린 시절의 나는 언제나 결핍에 허덕였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에 대한 갈증인지도 모른 채, 그저 막연한 인정과 시선이 고팠다. 공부를 아주 잘해서 전교생의 우상이 되거나, 특출 난 재능으로 무대 위에 서기에는 나는 너무 부족하고 소심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아주 쉽고 빠르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연애’였다.


십 대 시절의 나에게 연애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난도 높은 퀘스트를 깨 나가는 게임에 가까웠다. 동네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이른바 ‘적당히 인기 있는’ 남자아이를 목표로 삼는다.(너무 인기가 많으면 실패 확률이 높으니) 그리고 끈질기게 그 주변을 맴돌며 마음을 얻어낸다. 마침내 그 아이와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이 친구들 사이에 퍼질 때, 그들이 내게 던지는 “진짜? 네가 걔랑 사귀어?”라는 놀라움 섞인 질문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가장 쉬운 성취의 문법이었다.


그러나 게임의 끝은 허무했다. 공들여 공략하던 보스를 처치하고 나면 화면에 뜨는 'Game Over'처럼, 사귀기로 한 그 순간부터 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성취감은 짧았고, 공허함은 길었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대상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실패도 많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좋아한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따라다니면 된다. 이 남자에게서 저 남자로, 이 헤어짐에서 저 만남으로 부지런히 시선을 옮겼다. 그것은 내가 채우지 못한 내면의 거대한 허기를 메우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이었다.


이어진 나의 20대는 그 탐욕이 정점에 달했던 ‘암흑기’였다. 현실의 나는 보잘것없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이었다. 백수와 다를 게 없는 현실이었고, 미래는 안개처럼 불투명했다. 현실이 비참할수록 나는 더욱 연애라는 마약에 매달렸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 준다는 착각이 있어야만 겨우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준 것이 가짜였기에, 돌아오는 것 역시 가짜일 뿐이었다.


진심 없는 만남 끝에 남은 것은 누더기가 된 마음과 깊은 불신이었다. "역시 사람은 믿을 게 못 돼." 나는 내 잘못으로 초래된 결과들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사람들의 연락을 끊었다. 어두운 방 안에 갇혀 비관적인 생각들만 켜켜이 쌓아 올렸다.


늘 집에 처박혀 있었기에 그 시절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지저분한 환경이었다. 나는 지금도 세상에서 바퀴벌레와 곰팡이를 제일 싫어한다. 이유인 즉, 당시 내가 머물던 낡은 월세방들은 그것들의 천국이었고 난 늘 그곳들과 사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자려고 누워서 어둔 방바닥을 보고 있으면 바퀴벌레가 기어 나왔다. 잠에 들면 바퀴벌레가 내 몸 위를 기어 다닐 것만 같았다.


벽지는 습기를 머금고 있어 헹거에 걸어둔 옷은 늘 축축했고, 초록색 곰팡이가 아닌 척 피어있는 일도 잦았다. 바닥 쪽 벽면은 곰팡이의 뿌리가 깊은지 락스물로 닦아도 어느새 위로 슬금슬금 영역을 넓히며 번졌다. 그 눅눅하고 불쾌한 냄새는 단순히 방의 상태가 아니라, 당시 내 삶의 냄새이기도 했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려, 가장 쉬운 사람에 매달려 발버둥 칠수록 내 삶은 곰팡이처럼 잠식되어 갔고, 화려한 주목을 꿈꿀수록 바퀴벌레처럼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가장 쉽게 주목받으려 했던 대가는 혹독했다. 연애라는 게임을 통해 얻었던 그 알량한 권력감은 결국 나 자신을 파괴하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연애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나의 가치’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뿐이라는 것을, 그 곰팡이 가득한 방에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옆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곰팡이를 닦아내고 환기를 시키듯, 내 안의 가짜 욕망들을 하나씩 털어내고 있다. 소심하지만 주목받고 싶었던 그 아이는, 이제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를 빛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비록 그 길이 연애보다 훨씬 느리고 고될지라도, 적어도 이제는 자고 일어났을 때 마음이 식어버리는 허무함은 느끼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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