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나는 한때 SNS에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잘 사는 척, 행복한 척, 바쁜 척하는 장면들이 흘러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나를 드러내기보다 연출된 나를 소비하는 무대 같았다. 그래서 굳이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집 가까운 곳에 한 회사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간 면접 자리에서 SNS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답했다. "허무해서 하지 않는다"라고. 잠시 정적이 흘렀고, 면접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때의 나는 세상과 조금 어긋난 채 서 있는 사람 같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머뭇거리는 사람이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수많은 순간을 놓쳤다. 개그 무대를 보시곤 한 연극영화과 교수님이 학교에 입학하지 않겠냐는 제안에도, 갈갈이 개그 극단에 입단할 기회에도, 나는 늘 마지막 문턱에서 돌아섰다.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땐 몰랐다. 그게 얼마나 큰 기회였는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기회는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을 돌린다면 기회를 잡고 싶을 정도로 아깝고 귀한 기회였다. 하지만 이를 악물며 다짐할 수밖에 없다. 내게 또 기회가 오면 머뭇거리지 않겠다고. 내 성격을 핑계 삼아 또 물러서지 않겠다고.
그런 나에게 블로그는 기회처럼 다가왔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웃지 않아도 되고, 글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공간. 사업을 시작하며 대면 영업을 할 깜냥은 아녔기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온라인에서의 기록이었지만, 나는 어느새 독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글을 보고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글을 쓰고, 구조를 공부하고, 노출의 흐름을 읽고, 무엇이 통하는지 실험했다. 블로그는 내게 새로운 기회였다. 지독하게 매달리며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감사하며 안도했다. 이번에는 기회를 잘 잡았다고.
물론 여전히 고민은 있다. 얼굴을 드러내야 좋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앞에서는 아직도 망설이게 된다. 카메라를 켜는 순간 굳어버릴 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글이라는 통로는 나에게 열려 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방식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는 걸, 나는 블로그를 통해 배웠다.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
라는 마셜 맥루한의 말처럼, 나는 블로그를 활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블로그가 나를 만들고 있었다. 기록하는 습관을, 꾸준함을, 외부의 기준을 이해하는 현실감을, 그리고 기회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나는 더 이상 SNS를 허무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공간이 허무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느냐의 문제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특출 난 재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영업을 할 배포도 없는 소심한 사장이자, 당장 벌어야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배웠고 더 집요하게 붙들었다.
이제 블로그는 나의 무대가 되었다. 말보다 글이 편한 내게, 얼굴 대신 문장으로 서도 괜찮다고 허락해 준 공간. 한때 개그 극단 문 앞에서 돌아섰던 내가,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무대 위에 서 있다. 비록 조명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는 내 속도대로 걸어 나간다. 그렇게 나는, 소심한 사람이 선택한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