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점심시간 식당 TV에서 속보 자막이 흘렀다. 출판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 젊은 작가의 부고. 놀란 나는 숟가락을 든 채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돌아와 책상에 앉자마자 그녀의 책을 꺼냈다. 몇 달 전 읽고 밑줄 그어둔 문장들이 다시 살아났다.
나는 바로, 누구보다 빠르게 그녀를 애도하는 글을 썼다. 작가로서의 의미, 내가 느꼈던 감정, 그녀의 문장이 내게 남긴 것들. 글은 빠르게 퍼졌다. 조회수는 가파르게 올랐다. 화면 속 숫자들은 마치 “너는 지금 주목받고 있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글에 댓글이 달렸다.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메일 함을 여니 영국 BBC의 한 기자. 한국 문화를 다루는 코너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싣고 싶다며, 내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했다. 화상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내가? 한국 독자를 대표해 목소리를 낸다고?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오래 바라던 장면 같았다. 누군가 공식적으로 나를 부른다는 것. 글 뒤에 숨지 않고, 얼굴과 목소리로 서야 하는 자리. 나는 흔들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가능하다고.
시차는 냉정했다. 그들은 속보를 내야 했고, 한국은 밤이었다. 밤 11시.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 불을 낮추고, 노트북을 켰다. 카메라 속 내 얼굴이 낯설었다. 조명은 괜찮은지, 목소리는 떨리지 않을지, 설명은 충분한지,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말하진 않을지. 갑자기 내가 초라해졌다.
블로그 조회수 몇 만이 무슨 의미인가. 국제 매체 앞에서 나는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괜히 아는 척하다가 빈약함이 드러나면? 한국을 대표한다는 말이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대표가 될 만큼 충분한가.
전화벨이 울렸다. 국제번호. 화면에 낯선 숫자들이 반짝였다. 심장이 귀 안쪽까지 뛰어올랐다. 받으면 시작이다. 받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다. 나는 몇 초를 버티다 결국 화면을 뒤집어버렸다. 벨은 멈췄다. 고요가 내려앉았다. 숨이 가빠왔다. 그리고 나는 메일을 썼다. 일이 생겼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손끝이 차가웠다.
기자는 이해한다는 답장을 보냈다. 차분하고 따뜻했다. 다음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나는 모니터를 오래 바라봤다. 이런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올까. 나는 또 피하고 말았다. 나는 늘 코앞에서, 이런 순간에서 도망친다. 무대는 원하면서, 조명이 켜지면 눈을 감는다. 소심하지만 관종인 사람. 관심은 갈망하지만 검증은 두려운 사람.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전화벨을 피하며 살 것인가. 어쩌면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시간을 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은 조금 다르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채로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변명은 사라지니까.
나는 실패한 인터뷰 대신, 이 글을 쓴다. 도망친 기록을 남긴다. 적어도 여기서는 숨지 않는다. 부끄러움도, 떨림도, 회피도 모두 적는다. 언젠가 또 전화벨이 울리면, 나는 오늘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피한 나를 기억하는 것이, 다음에는 받기 위한 최소한의 용기일지 모른다.
나는 아직 절망 속에 있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전화를 받지 못한 밤도, 결국은 한 장의 이야기로 남는다. 어쩌면 나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되는 자리에서.
다음에 또 벨이 울리면, 나는 묻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니?”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라도, “안녕하세요.”라고 말해보고 싶다. 그러고 나면 준비된 내가 벌떡 일어서 무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소심해 자꾸만 주저앉힌 관종의 내가, 드디어 두 팔을 펼치고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