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무대가 있다면 어디든 올라갔고, 누군가 판을 깔아주면 신이 나서 놀았다. 아무도 불러주는 곳이 없으면 텅 빈 방에서 혼자 1인극을 했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관객을 앞에 둔 것처럼 대사를 하며 춤을 췄다. 그때의 나는 분명 세상에 나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조금 더 멋지게, 조금 더 빛나게 갈고닦아서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마음 옆에는 늘 수줍은 내가 함께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닿으면 얼굴이 붉어지고, 괜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와 식은땀을 흘리며 붙잡는 자아가 동시에 나를 잡아당겼다.
그래서 나는 늘 팽팽하게 당겨진 줄 위를 걷는 사람 같았다. 앞으로 나가면 시선이 무섭고, 뒤로 물러서면 마음이 답답했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내 안을 이리도 흔드는 이유가 뭔지는 지금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결국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전 글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관종 기질을 이야기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예전처럼 외모를 가꾸거나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쉽지 않다. 거울 속의 나는 무대 위의 배우라기보다는 평범한 아줌마에 가깝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용히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심히 고생하는 나에게 미안하지만 그렇게가 안 된다. 하지만 다행이게도 나에게는 아직 하나의 무기가 남아 있다. 글이다.
말 대신 문장을 꺼내 놓으면, 나는 조금 더 솔직해진다.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할 때는 주저했던 이야기들도 글 속에서는 조용히 흘러나온다. 어쩌면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대신 문장 뒤에 서는 방법을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의 나의 무대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블로그와 브런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내 글을 툭툭 내려놓을 것이다. 크게 떠들지 않아도 괜찮다. 조용히 문장을 남기고, 누군가가 우연히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됐다.
세상에 나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관종과, 그 뒤에서 머뭇거리며 숨고 싶어 하는 소심한 사람. 나는 앞으로도 아마 이 두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둘 중 누구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대신 나는 그 둘을 함께 데리고 살기로 했다.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꽤 시끄럽게 노랠 부르고 춤을 추고 있는 나.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소심한 관종은 만족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드디어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주목을 받게 될 거다. 내가 써온 문장들이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말해줬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