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양 있는 아줌마 Nov 25. 2022

피해의식

요즘 글을 적으면서 느낀 부분인데 내게 피해의식이 적잖이 있다는 것이다.

늘 객관적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내가 화가 나는 부분이 실은 내 마음이 그렇게 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화가나는 상황을 들여다보니 그 때의 내 감정은 내가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

(결혼을 한 이후에 내가 밑지는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듬)이 들었으며 그 원인을 

내가 아닌 엉뚱한 곳에 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내가 화가 나는 상황>

1. 아이들이 다투고 엄마를 부르며 서로간의 잘잘못을 따져 혼내주길 바란다.

2. 첫째아이는 유독 엄마를 부려먹는다.

3. 남편은 가정적이지 못하고 나에게 독박육아라는 타이틀을 안겨줬다.

4. 밥벌이는 나의 흥미와 적성에 맞지 않는다.

5. 나를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6. 내마음을 아무도 몰라준다.

7. 나만 힘들다.

8. 내가 심적으로 힘든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탓이다.

자, 이제 팩트체크를 해봐야겠다.

1. 아이들이 다투고 엄마를 부르며 서로의 잘못을 이르는 것은 내가 그렇게 아이들을 길들인 것이다.

    늘 둘이서 싸우면 그 즉시 엄마인 나는 그 상황에 끼어들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자식을 편애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자 

    판사로 빙의하여 서로간의 잘잘못을 퍼센트지까지 따져 조목조목 알려주고 사과하도록 했다.

    이 와중에 나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침해했다.

    싸울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 엄마 성격상 부정적인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니 그 상황을 빨리 

    해결해주고자 개입했고, 남매 간에 이야기를 하며 혹은 더 싸우더라도 둘이 해결할 수 있는데 

    그들만의 리그에 어른이랍시고 끼어들었다.

    사과 또한 그 즉시 하라는 법이 어디있단 말인가.

    엄마인 나조차도 남편에게 맘이 상해서 한달 가까이 꿍해있었던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왜 굳이

    그 즉시 내 눈앞에서 내 마음 편하라고 사과하도록 강요하는 것인가.

    결국 내 마음 편한 쪽으로 육아를 한 것이 이제 와서 귀찮아진 것이다.

    남매 간의 싸움을 그들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놔두었으면 지금쯤 무수한 연습을 거쳐 본인들끼리

    해결하는 나름의 암묵적 규칙이 생겼을텐데 아직까지도 갈등상황에서 엄마를 외쳐대니 엄마만

    힘든것이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2. 첫째 아이는 유독 엄마에게 뭘 해달라고 한다.

    첫째 아이가 요구가 많은 것일 수도 있지만 늘 나는 첫째 아이의 마음을 신경쓰고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아이의 요구를 거의, 즉시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러한 훈련 결과 아이는 조건화가 되어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요구를 한다. 그것에 대한 엄마의 반응 역시 빠르지 않을 시 짜증이 플러스가 

    된다. 

    자신이 어떠한 것을 말했을 때 들어주고 빠른 반응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역시 내가 아이와의 교감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리 조건화가 되도록 한 것이다.

3. 나를 도와주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깊은 빡침을 느낀다. 하지만 곰곰히 되짚어보면, 남편은 변하였다.

    나와 대화도 재미지게 잘하고 바쁜 사람이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심적으로 힘든 부분을 늘 일차원적으로 남편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는 통에 남편의 마음이 

    시들해졌다.

    나의 잘못된 소통방식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본인만의 생존방식을 택한 것일 뿐 

    여전히 그도 열심히 살고 있다.

4. 밥벌이가 재미가 없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밥벌이 또한 내가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여 얻은 영광이며 전공 또한 그때의 나의 선택이었다. 지금에 와서 내 관심사가 달라진 것

    또한 나의 선택인 것이다.

5. 내 마음을 아무도 몰라준다. 

   당연한 사실을 이 나이가 되도 받아들이지 않고, 아이같이 징징대고 있는 꼴이라니.

    아니,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의 진짜 마음을 모르겠고, 아이들의 마음도 때로는 몰라서 답답한 데

    누가 나인양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주겠는가. 

    <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타타타의 노래가 떠오른다...

6. 나만 힘들다.

     5번과 연결된 아이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겠는데 왜 자꾸 나는 내 것만 크게 보이는 걸까. 휴우.

7. 이 또한 어린이자아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내 마음에 대한 내 책임을 자꾸 다른 사람 탓,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다.

    ' 내 마음의 주인은 나다.'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엿한, 뭐든지 할 수 있는 달라진, 어른이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을 고를 수 있다.' 

결국 피해의식이란 내 선택에 대한 모독이다.

그때의 내가 어떠한 마음을 먹고,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무수한 나의 생각과 마음들이 혼합되어 액션을 취했고, 그러한 선택의 결과들이 모여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선택한 이 삶의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현상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수긍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금 나에게는 못마땅한 현실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짜증만내거나 다른 곳에 탓을 돌리는 

어린이 자아가 아닌 으른같은 모습의 어른자아가 필요하다.

이전 09화 자기연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