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양 있는 아줌마 Nov 25. 2022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허탈함에 관하여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주민 중에 늘 밝은 표정의 아주머니가 계신다.

아이들도 셋이라 힘드실 거 같은데 마주칠 때마다 늘 웃으며 기분좋게 인사해주신다.

나는 참 이게 어렵다.

그때 그때 내가 피곤하고 힘들면 웃음이 안나온다.

인사는 하지만 표정은 언짢다.

하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농담도 던지고, 실없는 말도 한다.


어찌 사람을 대할 때 한결같이 저런 표정과 태도가 나오는 걸까?

그 아주머니와 예전에 차를 마신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원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외동딸이었다.

괜스레 심술도 났다.

아니라고 해도, 난 이제 다 큰 어른이라고 해도,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해도,

무심결에 튀어나온 생각은 참 추한 피해의식이었다.

아, 저 아주머니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사랑을 나눠줄 줄 아는 마음을 가졌구나.

나는 억지로 하려해도 안되는 게 저 아주머니는 자연스레 몸에 베어져 뿜어나오는구나......

그 밝음을 늘 동경하면서도 내 것이 아닌 것을 탐욕하는 것 같아 신경질이 났다.


왜 기분이 들쑥날쑥일까.

감정기복없이 나직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 걸까.

감정기복이 있다는 것은 나쁜 것일까.

그럼 나는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결점에 평생 발목 잡혀 살아야 하는걸까.

왜 나는 그렇게 신경질이 나는 걸까.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다고 느껴서일까.

평범했던 가정을 텔레비전에 나오는 하하호호하는 행복한 가정으로 둔갑시키고 싶은 내 욕심이 문제일까.


조금씩, 개미똥꾸멍만큼이라도 내 마음이 편한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다 피씩 이미 정리되었다 생각했던 불편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면 정말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내 생각과 감정을 깨닫고, 글로 정리하고,

내 마음을 느끼고, 내 행동의 이유를 파헤쳤으니

나는 대번에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착각했나보다.

다 잘될거라는 확신에 차서 오만했나보다.


나와 첫째아이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이유를 알았으니

'나는 첫째아이와 더 잘지낼 수 있겠다.'라는 기대에

한동안 잘 지낼때는 괜찮다가 지난 주말  그날의 좋지 않은 기분 탓을 아이에게 돌려 되도 않는 말로  불쑥 화를 내는 나를 보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탄식했다.


아이들에게 짧고, 간단한 말로 알려주고, 더이상의 말은 삼가해야 겠다고 다짐한 이후로도

내 마음 속의 불씨를 다 내던지고 싶어서 구구절절 불경외듯 쏟아내는 나를 보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한숨이 나왔다.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알고자 했을 때도,

'아 나의 일방적인 화살이 많았구나.'하고 반성했으면,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더 편한 마음을 갖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찡찡거리는 표정을 짓고 본체만체하는 나를 보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한탄스러웠다.


사람을 대할 때 늘 한결같이, 예측가능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나의 결심이 번번이 실패했을 때도

"아, 사람은 진짜 변하지 않는구나..." 스스로 책망하였다.


인간관계에서 선호도 높은 사람은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한다.

앞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이런 표정을 지어 놓고, 뒤에가서 다른 말과 다른 표정을 지을 것 같은 사람. 말고.

어떤 때는 나에게 친근하게 대했다가 어떤 때는 나를 멀게 대하는 사람. 말고.

또, 말을 조리있게 잘하고 센스있는 사람이 인기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나에게 똑같은 모습을 보여줘서

'이 사람은 이런사람이구나.'라고 파악이 되는 사람이 믿음이 가고 곁에 두고 싶은 것이다.

늘 들쑥날쑥한 감정을 보이는 사람은 나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니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변함없는 사람, 늘 한결같은 사람이 끌린다.

반대로 나는 나의 변함없는 부분을 꾸짖고 있다.

나는 현재 나의 단점을 결함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온전하게 만들고자 애쓰는 것 같다.

나의 부족한 부분,  완벽함을 위해 흠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만 너무 집중하여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내 눈이 자꾸 나의 잘하는 부분보다

나의 못나고, 부족한 부분을 비출 수 있다.

그것만 자꾸 보고 나를 낮추는 게 내 마음을 오히려 더 불규칙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변함없이 늘 한결같은 사람'이란 타이틀만 우상시하여

나를 거기에 맞출 수는 없다.


때로는 그냥 모른 척, 못본 척 지나가는 게 필요할 것 같다.

흘깃흘깃 쓰윽 보고, 좀 더 담담하게 나의 누추함을 건너뛰어야겠다.

"아, 나는 진짜 똑같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져 기분을 낭떠러지 끝까지 끌고 가지 말고,

슬그머니 외면할 줄 아는 뻔뻔함을 탑재해야 내가 한발짝

더 내딛을 수 있다.

어떤 때는 내 행동과 마음에 의미를 달고 이유를 캐내는 것보다

'아, 나는 지금 그렇구나'. '그런가보네.',

' 그냥 그런가 보지.' 하고 넘기는 시원시원함을 가져야겠다.

이러다 쿨병에 걸려 쿨방망이 맞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이전 10화 피해의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