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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 있는 아줌마 Nov 25. 2022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부담감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니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그 가치를 중시 여기는 것 같은데 요컨대, 한 눈 팔지 않고, 나쁜 짓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행동을 안하는 것이다.

또한, 시간을 허투로 쓰는 것을 여유라 부르며 즐기기보다는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지조급함과 불안감을 느낀다.

무언가 내 몸과 머리가 움직여야 안도감을 느끼고 뭐라도 내가 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사는 것 같다.

이렇게 '성실하게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최선의 방법이다'라는 삶에 대한 태도는

아빠를 통해서 배웠다.

늘 하고자 하는 말이 많았고 그렇기에 그 많은 말들이 뒤섞여 앞뒤가 맞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빠는 그 성실함을 몸소 보여주었기에 

나는 첫번 째  눈으로 배우게 되었고,

다음으로 세뇌를 통해 체득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로 받아들인 듯 하다.

문제는 이 성실함을 내 의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부모가 물려준 이 무형의 산물인 '성실함'이 싫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면 어릴 적부터 내가 품어온 '아빠의 성실한 모습'이 싫었다.

인정한다. 늘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일을 하고 한푼이라도 더 모으고자 했으며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예의 발랐으며 정도 많았다. 

그 이면의 문제점이 있었다.

자신의 성실함을 자식에 대한 희생으로 맞바꾸며 늘 생색을 냈으며 몸이 여기저기 쑤신 것이

자식들 탓인양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아빠가 성실한 사람인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성실함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무수한 다른 감정들이 굴비마냥 엮어져 나오는 것이 문제다.

누구에게나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성실함'이란 단어는 아빠에게 느끼는 감정과 연결이 되어 있다.

아빠가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온 과정을 봐왔고 나또한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반면, 아빠가 성실했기에 내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다른 상황, 

감정들로 인해 '성실함'이 썩 반갑게 내키지만은 않는다.

과감히 이야기 하자면 때로는 이 '성실함'이 '멍청'해 보이기도 했다.

성실하지 않아도 머리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많고, 성실하지 않아도 재테크를 열심히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고 성실하더라도 쉬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성실한 거 말고도

가족끼리의 추억등 더 중요한 가치가 많은데 왜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다른 방향과 관점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묵묵히  하루하루를 미련스럽게 버텨내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자식을 위해서 성실하게 일한다면서 자식 생일에 아이가 좋아하는 선물을 할 생각도 못하면서 말이다.

나이가 먹다보면 부모에 대한 객관적인 관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다 아둔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만 살려고 하면서 입으로는 힘들다, 힘들다.를 

되뇌이는 내 모습을 소름끼치게 발견하면 이렇게 가르친 부모가 미워진다.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머릿속에 저장된 것들이 어른이 되어 나와 맞지 않다고 여길 때

이것을 벗겨낼 수도 없고, 나를 위해 애쓴 부모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아 죄스러워 버릴 수도 없고,

어거지로 갖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 

나는 반대로 내 스스로 생각하련다. 

미련스럽게 몸과 마음을 필요이상으로 쓰면서 버거워하는 성실함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덜 쓰면서

마음 편한 삶을 살아도 괜찮으며 그 또한 삶의 다른 방식이다. 고 말이다.이런 나의 생각이 맞는지, 

내가 가진 생각을 안고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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