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발음이 너무 좋아요!!”
“해외에서 오래 살다 오셨어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해마다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로부터 듣는 소리다. 나의 영어를 들으며 탄성과 박수가 터지기도 한다. 여태껏 영어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듣고 산다. 영어 유치원부터 시작해 원어민과의 소통이 원활한 Z세대 학생들로부터. 나는 한국 공교육 영어 교사로 살아가기에 참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나의 영어 발음이 원어민처럼 들리는 까닭은 대학교 때 교수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비법 때문인 듯하다. 한 단어 안에서 주는 강세와 한 문장 안에서의 높낮이인 억양을 정확히 하면 된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영어로 발음해 보면 ‘지루—살렘’, ‘텔 아비—브’가 된다. 리드미컬한 운율 속에 완전 다른 도시인 느낌이 든다. 이스라엘을 방문한다면 꼭 ‘텔 아비—브’를 보고 가시길.
헌법상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떠나 버스로 55분 걸려 도착한 국제법상의 수도 텔아비브. 이곳은 이스라엘 서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 숙소 바로 앞에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지금껏 보아온 이스라엘은 잊어야겠다. 이곳은 매우 현대적인 풍광의 해안 도시다. 숙소에 여장을 푼 후 바로 해안가로 걸어 나가 지중해를 만끽하며 한참을 걷는다. 비치 발리볼을 하는 청년들, 높은 파도에 몸을 실은 서퍼들이 보인다. 텔아비브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기억하는 이스라엘은 많이 달랐을 거 같다.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벤 구리온 거리로 접어든다. 길 가운데에는 나무, 벤치, 공용 자전거,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그 양옆에 인도가, 그리고 맨 끝 가장자리에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다. 지나다니는 차보다는 주차되어 있는 차가 많은데 다들 소형차다. 도로 양옆으로는 필로티 층과 3층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플랫 형태의 주택들이 있다. 어슴푸레해진 텔아비브 도심. 하나둘 켜지는 가로등과 함께 나의 기분도 밝아진다.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돌봐진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라트비아의 리가에 이어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도시다. 그 도심 한 곳에 이르렀을 때 나의 눈길을 끄는 식당이 있다. ‘Korean Dessert Cafe’라는 영문과 두 글자의 한글로 된 상점 이름이 적혀있다. 한국의 빙수를 파는 곳이다. 상점 앞에 태극기를 꽂아 둔 것이 인상적이다. 이스라엘에 들어온 이후 한국인을 본 기억은 없는데 한국 카페는 있구나.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 한국인은 보이지 않는다.
텔아비브에 머무는 동안 기차를 타고 ‘하이파’에 다녀온다. 이스라엘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항구이다. 엄마와 나는 그곳에서 ‘봄’을 만난다. 우리나라라면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을 2월 11일이다. 엘리야 선지자를 기념하기 위한 스텔라 마리스 수도원을 등지고 내려가다 보면 저 아래 푸른 지중해를 배경으로 흰색 둥근 돔의 성모 마리아의 동굴이 보이는 언덕에 서게 되는데 바로 그 언덕에 노오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곳에 고등학교 한 학급 정도 되는 학생들이 단체 체험학습을 나왔는지 줄지어 지나간다. 비록 엄마가 애써 찾던 엘리야의 동굴은 끝내 찾지 못하고 말았지만, 고요한 그 언덕 위 우리에게만 찾아온 듯한 아름다운 봄은 포근하게 기억 속에 담길 것이다.
텔아비브에서의 마지막 날, 마지막 햇살을 더 붙잡을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숙소 앞 해변으로 내닫는다. 엄마와 나는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왔다 갔다 하며 지중해를 눈 속에, 머릿속에, 가슴속에, 영혼 속에 담아 두려고 애쓰고 있다. 천천히 수평선으로 가라앉는 붉은 태양의 일렁임 속으로 날아드는 새떼들, 패들 보트를 함께 타고 노를 저어가는 두 남자, 반려견과 함께 해안을 뛰어가는 여자, 한참을 모래사장에 홀로 앉아 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청년. 이들의 실루엣을 카메라에 담으며 엄마와 나는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장엄한 일몰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여행도 저물어가고 있다. 그 때, 엄마가 던지는 한 마디.
“아!!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