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중동이니 이곳에서 사 먹는 음식은 거의 중동 음식이다. 나에게는 거의 생소한 음식, 낯선 맛과 향이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처음 먹어 본 훔무스. 그것은 병아리콩에 올리브 오일과 각종 향신료를 섞어 으깬 서양의 매쉬드 포테이토 같은 음식이다. 그리고 팔라펠과 슈와르마. 팔라펠은 병아리콩을 갈아 둥글게 빚어 튀긴 요리이며, 슈와르마는 직경이 10~15cm 정도인 둥글고 얇은 피타 빵을 반으로 쪼개어 거기에 구운 양고기를 잘라 감자 프라이드와 야채 샐러드와 함께 넣은 음식이다. 나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대식가이며,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지금껏 생각해 왔다. 해외 어디에 있어도 김치나 한국 음식을 그리워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중동은 다르다. 팔라펠도 슈와르마도 훔무스도 한 번 이상은 먹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이곳 예루살렘에 서양 음식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을 파는 식당도 쉽게 찾을 수 없다. 여행을 다니며 한국 음식을 챙겨 넣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컵라면을 몇 개 가져왔다. 이번 여행의 중반을 넘기며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은 우리의 소중한 저녁 식사가 되어 준다.
갑자기 이곳에 와서 입이 짧아진 나는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과일이 눈에 들어온다. 숙소에서 몇 걸음만 가면 나오는 다마스커스 게이트.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정수로 이끄는 미로 같은 통로의 입구다. 입구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계단 양쪽으로 다양한 상점들을 만날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는 계단. 그 제일 꼭대기에 딸기 노점이 있다. 우리나라 돈 7,000원에 해당하는 20세켈을 주니 엄청난 양의 딸기를 안겨주는데 딸기의 크기가 한국에서 본 적이 없는 크기다. 대왕 딸기. 입에 맞지 않는 중동 음식 대신 나의 뱃속을 향기롭고 든든하게 채워준다.
딸기를 사 먹으며 계단을 내려간 후 그대로 계속 걸으면 어디선가 본 듯한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그 한 가운데에 황금빛 돔 지붕을 지닌 이슬람 사원인 ‘바위 사원(Dome of the Rock)’이 나타나고 살짝 방향을 틀어 둘러보면 유대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이 보인다. ‘바위 사원’도 ‘통곡의 벽’도 오랜 시간 유대인들과 이슬람인들이 각자 자기들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그곳에 도착한 시각 ‘통곡의 벽’ 앞에는 유대인들로 가득하다. 귀밑 머리를 말아서 길게 늘어 뜨리고 검은색의 둥근 모자와 외투를 갖추어 입은 다양한 연령대의 정통파 유대인 남자들이 모여든다. 기대하지 않았던 정통 유대인들의 모임을 흥미 있게 지켜보다가 엄마와 나는 통곡의 벽 광장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식수대 중 한 곳에서 시원하게 물을 마신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 멈춰버린다.
“잠깐만!! 저기 봐!”
또 다른 식수대로 유대인들이 다가가 손을 씻는다.
‘마시는 물이 아니었구나!’
‘왜 이곳을 식수대라고 생각했을까?! 누가 엄마와 나를 보지는 않았을까?’
유대인들은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꼭 손을 씻고 통곡의 벽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민망함에 엄마와 나는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