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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협곡에서 엄마를 구해 준 검은 망토 사나이

by 보리차

“어.. 어... 마을이 어디갔어??”

욕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는데 비명에 가까운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왜? 왜 그래?”

“왜 여기 아무것도 없니? 어젯밤까지만 해도 여기 마을이 있었잖아.”

분명 그랬다. 와디무사에 있는 호텔 방을 어제 오후 들어왔을 때 창밖은 분명 마을이었다. 잠들기 전 바라본 창밖에는 마을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침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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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_171540.jpg 와디무사 숙소에서 잠들기 전 창밖에는 분명 마을이 이렇게 있었다.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마을 전체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삼켜버린 안갯속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 심한 안개와 내리기 시작하는 비에도 불구하고 약속된 일정에 따라 운전사가 숙소에 와 우리를 싣고 차를 몰아 페트라 입구에 내려놓는다.


2천여 년 전 협곡을 이루는 붉은 암벽을 파내거나 깎아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도시 페트라.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페트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양옆으로 80m 높이의 절벽이 우뚝 솟아 있는 붉은 사암 협곡 ‘시크’가 나온다. 1km 남짓 되는 ‘시크’를 따라 걷는 동안 두근거리는 까닭은 시크가 끝나는 지점에서 ‘알 카즈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보물 궁전인 ‘알 카즈네’가 눈 앞에 나타나자 “아! 이거구나.”하는 소리가 나온다. 그리스식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는 웅대한 2층짜리 건물이 눈앞에 떡하니 서 있다. 장밋빛 사암 절벽에 새겨 만들어 놓은 이 건축물. 이것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구나. 이후 파사드 거리를 지나 원형극장까지 본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수도원인 ‘알 데이르’까지 가 봐야 하겠지만 더 이상 들어가고 싶은 의욕이 나지를 않는디. 빗물로 길이 미끄럽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와디럼과는 달리 페트라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것은 페트라를 이미 많은 미디어를 통해 보아왔기 때문이리라. 분명 처음 온 곳이지만 낯설지 않기에 감동이 거의 없다. 여행 동안 방문할 곳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온다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비가 내린다. 이곳은 어쨌거나 협곡이다. 걸어 나오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처마 같은 바위 밑에서 비가 멈출까 하여 잠시 머물기도 한다. 비가 줄어들자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밟을 땅이 없다. 빗물로 인해 길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돌을 던져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넌다. ‘아! 엄마를 어쩌지?’ 그 순간 내 뒤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엄마를 누군가가 휙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물웅덩이를 건너 엄마를 안전한 땅에 내려놓고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검은 망토를 입고 있던 남자. 누구였을까. 성배를 찾으러 페트라에 들른 인디애나 존스였을까.


페트라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운전사를 만나 다시금 국경을 향해 출발한다. 빗속에서 페트라 협곡을 애써 다녀오느라 긴장했었기 때문일까. 차 안에서 잠이 쏟아진다. 꾸벅 꾸벅 한참을 졸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뭔가 이상하다. 차가 움직이고 있는 건가? 가늘게 눈을 떴다. 헉!! 차창 밖으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침에 무사마을을 집어삼켰던 안개인가? 아니다. 이건 안개가 아니다. 구름 속에 갇힌 거다.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앞차가 안 보인다. 여태껏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안개가 심해도 최소한 앞차는 보였었다. 운전사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나와 엄마는 차 안에서 쿨쿨 자고 있었나 보다. 상황을 파악했을 즈음 ‘쿵’ 둔탁함이 느껴진다. 앞차와의 부딪힘이다. 잠이 확 깬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려서 확인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는 이 상황이 일상인 걸까? 긴장 속에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차, 그리고 어느덧 조금씩 조금씩 확보되기 시작하는 시야. 드디어 운전사에게서 한마디의 탄식이 터진다.

“휴―.”

운전사는 우리를 국경 앞에 내려준다. 고맙고 미안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국경을 넘는다. ‘Good Bye’라고 적힌 요르단 국경을 향해 걸어간다. 구름 속 태양이 이 순간을 비춘다. 내 인생에 다시 요르단을 방문할 일이 있을까? 요르단 국경을 통과해 나가자 이번엔 ‘Welcome to Israel’이 우리를 반긴다. 그런데 이 기분은 뭘까? 어디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이 기분은.


20190207_165904.jpg 굿바이 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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