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랑 미얀마 가 볼래?”
“미얀마? 너 얼마 전 다녀온 곳이잖아.”
그랬다. 엄마와 떠나는 여행을 나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은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엄마 나이에 해외를 자유여행으로 떠나는 사람이 있을까? 처음 가는 곳에서 엄마를 옆에 두고 길을 물어가며, 때론 길을 헤매며 그렇게 다닐 순 없다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엄마를 안내할 수 있는 익숙한 곳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꼭 1년 전 왔던 미얀마로 다시 왔다.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아웅산 마켓을 가기 위해 숙소를 나와 미얀마의 수도 양곤 시청 앞에 서 있는데 그곳을 지나가는 버스들이 왠지 낯익다. 버스야 세계 어디서나 비슷할 테니까. 연한 녹색 칠을 한 버스. 동글 동글 귀여운 미얀마 글자들로 가득한 버스. 어라, 그런데 버스 번호가 정말 낯설지 않다. 7739번... 그리고 눈에 들어온 한글... ‘천연가스버스’!! 그리고 뒤이어 눈앞을 지나치는 파란색 버스를 보고 마침내 소리를 지른다.
“엄마! 봐바! 모란역 가는 버스야!”
파란색 759번 버스의 창에는 ‘아름마을, 야탑역, 모란역’이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다. 우리 나라 버스를 미얀마의 수도 한복판에서 보게 되다니!! 차량 앞뒤에 미얀마 글자가 자그마하게 적혀 있긴 하지만 차량 옆 창문 위에는 우리나라에서 도색한 그대로 한글로 적혀진 행선지가 남아있다.
내가 미얀마를 1년 만에 다시 온 것은 엄마에게 생생한 기억을 살려 완벽한 안내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사실 미얀마와 미얀마 사람들이 너무 그리워서였다. “밍글라바”를 외치며 수줍은 듯 밝은 미소를 보내던 미얀마 어린이들이 보고 싶었다. 타나카를 얼굴에 바르고 다니는 미얀마 여인들의 그 순수함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깊은 불심으로 평생 나쁜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정직한 미얀마 사람들을 다시 보면 힘이 날 것 같았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풍요로운 그들과 다시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바람이 나를 다시 이곳으로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폐차할 차들이 이곳 수도 한복판을 누비고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짠하기도 하면서 두 나라가 서로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미얀마 글자를 보고 그냥 무늬처럼 느끼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한국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 한국 글자를 지우지 않고 버스를 운행해도 별 불편함은 없나 보다.
아웅산 마켓을 둘러 본 이후, 차이나타운 근처를 지나다 발견한 한 아파트에 시선이 고정된다. 쇳물이 흘러내리다 굳어버린 흔적이 군데군데 있는, 허물어질 듯 보이는 그 건물을 보며 마음이 묵직해진다. 얼마나 오래된 아파트일까. 그 옛날에 저 아파트가 세워졌다는 건 그래도 한때 미얀마가 잘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랜시간 이어진 쇄국정책과 군부독재가 미얀마의 발전을 퇴보시켰으리라. 너무도 낡은 그 아파트를 카메라에 담으려다가 문득 차오르는 미안한 마음에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그러나 그 미안함도 나의 오만한 시각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그곳에 어린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분명 그곳에서 행복해할 것이다. 양곤 도심의 전깃줄에 빽빽이 앉아 있던 수많은 비둘기들도 매연 가득한 그곳에서 행복할 거 같다.